다롄 공장 초기의 일이다. 공장 안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휴지걸이에 휴지가 다 떨어지고 심지만 걸려 있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화장실 휴지는 떨어뜨리지 말고 제때 채워 넣으라고 하세요.”
공장장에게 다른 지시 끝에 이렇게 당부했더니 난색을 표하며 대답했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습니다. 걸어 놓기가 바쁘게 없어집니다. 너도나도 집으로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 중국 일반 가정에는 아직도 생필품이 그렇게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공중 화장실에 두루마리 휴지가 남아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그랬다. 이는 꼭 가난 탓만도 아니다. 문화 수준의 문제다. 우리가 먹고 살 만해진 지는 얼마나 됐으며, 공중도덕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정착된 지는 또 얼마나 되었는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보다 발전이 더딘 나라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언제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더냐’ 하는 태도이다. 나는 공장장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넣어 주세요. 열 개, 스무 개 화장실 비품장에 가득가득 채워 놓으세요. 뭐든지 있다가 없다가 하면 있을 때 집어 들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 아닙니까? 무한정 넣어 주세요. 두루마리 휴지 한 개에 50원 한다 치고, 만 개라 해야 그 값이 150만 원밖에 더 됩니까? 작은 비용에 그리 인색해서야 언제 이 사람들을 우리 사람 만들겠소? 그들이 우리 식구라 생각하고 좀 기다리면 더 이상 휴지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을 때가 올 것이오. 중화민족은 대 민족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존심을 세울 때까지 무한정 넣어 주고 기다립시다. 그들 하나하나의 힘이 모여서 우리 공장의 첨단 설비가 돌아갑니다.”
빈 말이 아니다. 나는 진정으로 중국인에게는 우리가 갖지 못한 대국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전쯤의 일이다. 북경 동물원에 반달곰을 보러 간적이 있다. 반달곰의 털에 흙도 거뭇거뭇 묻어 있고 깔끔치 못해서 속으로 ‘나라에서 운영한다는 동물원이라는데 어째서 동물들 관리가 저리 시원치 않은가’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동물원 이야기가 아니라, 동물원을 나와 점심 때 찾았던 그 근처 식당 이야기이다. ‘중국집’이 아니고, 민물생선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70살은 넘어 보이는 영감이 나와서 안내를 했다. 식당주인으로 보였다.
최근에 그 식당에 다시 가보았다. 그 주인이 아직도 건재했다. 내가 10여 년 전에 여기서 식사한 일이 있다고 하자 반색을 하면서 웃통을 벗고 자기 가슴을 탁탁 치며 아직도 이렇게 건강하다고 호쾌하게 웃었다.
우리 일행에게 지난번처럼 좋은 생선 맛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이제 자기 식당은 양자강에서 비행기로 수송하는 담수어만 쓴다면서 종이에 ‘고기 어(魚)’ 변에 ‘나라 궐(厥)’자를 써서 보여 주었다. 이게 무슨 고기 이름인가,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우리를 안내하던 사람이 우리의 쏘가리를 뜻하는 ‘궐(鳜)’자라고 알려 주었다.
쏘가리 요리를 먹는 동안 그 주인이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준 손님이라며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나도 그 마음에 감격하여 궁금한 것도 많이 물어 보고 꽤 친해졌다. 이런 생선을 비행기로 가져오면 보관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이 으쓱해서 나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여러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니, 그 안에 생선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크게 놀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수수하고 평범한 식당에 그렇게 고급 재료가 채워져 있을 줄 몰랐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앞으로는 허물어져 가도 안에는 금덩이가 들어차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가게를 내도 앞은 좁고 뒤는 크게, 겉은 허술해도 안은 번듯하게, 바로 ‘외빈내화(外貧內華)’가 중국식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소한 일화이지만 나는 그런 단면에서도 중국인의 대국 기질을 느낀다.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판단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쉽다.
“중국 애들 어쩌는지 아십니까? ‘여기 좀 쓸어라, 여기 좀 닦아 라.’ 아무리 지시해도 안 움직입니다. 내 호주머니 돈 털어서 음료수라도 사다가 먹이면서 시킵니다. 안 그러면 꿈쩍도 안 해요.”
이런 식으로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단정 짓는 것은 금물이다. 한국에서 파견한 간부들의 그런 하소연에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
“중국 사람들이 정말로 다 그 지경이라면 이 국제 사회에서 중국이 어떻게 되겠소? 중국은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요. 게으른 아이들이야 우리나라엔 없고, 미국에는 없겠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