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에 아주 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누가 나에게 기업의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주 간명하다.
“내가 잘 살고 내 주변을 잘 살게 하는 게 기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사(修辭)를 동원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지만 사실 무엇 때문에 기업을 하는가? 자기가 잘 살기 위해서다. 그게 가장 맞는 답변이다. 거기서 좀 더 범위를 넓혀 말하자면 내 주변 사람들도 잘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 주변 사람이라면 좁게는 가족, 친지가 될 터이고 나아가 내 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해당된다.
내 기업이 잘 되면 그들의 소득이 늘고 소비가 늘 것이다. 그게 곧 사회에 영향을 미쳐 사회가 윤택해지고 나아가 나라의 힘이 될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 인류 번영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기업의 사명에 대한 나의 소신이다. 한 마디로 ‘인류 발전, 국가 발전, 사회 발전, 회사 발전, 개인 발전’의 순서가 아니라 그 역순이라는 뜻이다.
나의 기업 인생의 막바지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두고 ‘그토록 어렵게 모은 재산인데, 저 양반이 제 정신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평생 기업을 경영하면서 구두쇠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소리라도 듣지 않으면서 권력이나 어떤 배경의 힘에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이만한 사업을 일구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는 부의 축적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있다. ‘나를 위해 남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내 이익을 위해 남을 손해 보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 분명한 원칙만 지키면 구두쇠라는 말을 듣더라도 이윤 추구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말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윤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물론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기독교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예수도 떳떳하게 장사해서 이윤 남기는 것은 나무라지 않았다고 봅니다. 성서에 경제 활동을 통한 이윤 추구를 비난하는 말씀이 있습니까? 나는 없다고 봅니다.”
그 기독교인은 나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막스 베버(Max Weber)라는 학자가 “현대 자본주의의 발달은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미래의 부는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지식이 결정한다”는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책도 읽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좀 더 쉽게 말하고 싶다.
‘이윤 추구에 있어서 그 폭은 경제의 법칙인 수요 . 공급의 이치가 정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10배 이익을 남기는 장사도 있고 100배, 1천 배 아니 그 이상 붙여먹는 장사도 있다. 100배 이익을 남기는 장사는 부도덕하고 10배 이익을 남기는 장사는 그보다 도덕적인가? 그렇지 않다. 예능이나 고도의 창의적인 지적 행위 그리고 스포츠 행위가 낳는 부가가치는 때로 1천 배, 1만 배 아니 그 이상 불어나지 않는가?
그러나 누구도 그러한 행위를 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장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값을 치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 이윤은 정당한 것이다.
같은 물감으로 그려도 내가 그린 그림은 단돈 1달러도 안 되는데 피카소가 그린 그림은 1억 달러가 넘는다고 해서 피카소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사는 것은 최소한으로 싸게 사고, 파는 것은 최대한 비싸게 판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남을 속이거나 가짜를 만들어 파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한다는 것이 철칙이었다.
따라서 정당한 이윤을 많이 내서 기업이 살아남는 데만 그치지 않고 계속 확대 발전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나라든 기업이든 가계든 한번 망하고 나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 망하기 전에 예방하고 힘을 키우고 끊임없이 혁신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업 경영을 전쟁하듯이 했다.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돈에 아주 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도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고 하지 않은가? GE의 잭 웰치(Jack Welch) 회장은 “기업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미 아는 것인데 표현을 그럴듯하게 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잭 웰치 자신은 사람을 많이 잘랐다. 그래서 중성자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의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그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리 자르는 것이 다른 일로 성공할 수 있는 시간을 그 사람에게 일찍 주게 되기 때문에 그를 오히려 더 아끼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중소기업 치고 ‘대우가 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삼영화학도 직원들로부터 봉급이 후한 회사라는 소리는 못 듣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 외에 할 말이 없다.
“대기업은 대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이 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이 일으키는 법입니다. 온갖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도 대기업이 될 수 있고 여러분도 대기업인이 될 수 있을 것이오. 꿈을 갖고 일합시다.”
장학재단 설립 이후 그룹 내 일각에서는 “우리한테는 푸근하게 못해 주면서 사회에는 몇천억 원을 내 놓는다”는 불만의 소리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인간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더 받고 싶은 게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그 러나 경영자인 나의 입장과 주장은 따로 있다. 나는 툭 터놓고 이야기 한다.
“여기보다 더 나은 직장이 있으면 그리로 가도록 하세요. 또 돌아오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돌아오세요. 문은 항상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조업체는 최소한의 고급 인력이 그 나머지를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다. 임금 구조가 자칫 방만해지면 적자 누적은 순식간의 일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한 사람, 한순간의 실수도 방심할 수 없다. 대기업처럼 조직적 안전장치가 없거나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답시고 빙빙 돌려 이야기하거나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스스럼없이, 가차 없이 질책하는 게 시정의 지름길이다.
나는 때로 분을 삭이지 못해 순간적으로 직원의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했다. 심하게 나무라다 보면 ‘지금 당장 그만 두라’고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다. 이런 거침없는 스타일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곤혹스러운 순간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행동들은 나의 오랜 경험과 ‘기업은 전쟁’이라는 나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대가 방아쇠를 먼저 당기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이 아직도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