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교육재단에 출연되어 있는 제주도의 크라운 컨트리클럽은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견실한 골프장이다. 은행 부채가 한 푼도 없을뿐더러 회원 수도 국내 골프장 중에 가장 적은 편에 든다.
회원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빚이 많다는 뜻이다. 대개의 골프장이 회원권의 형식으로 고객 예탁금을 모아서 건설비를 대체하는 방법을 쓴다. 예탁 기간이 5년, 길면 10년씩 된다. 큰돈이 필요할수록 회원권 판매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빚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크라운 골프장은 27홀인데도 회원이 300명밖에 안 된다. 빚을 최소화하려는 나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회원을 더 늘리지 않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제주도는 관광지다. 회원의 비중이 높아지면 그만큼 관광지를 찾는 비회원 고객들의 골프장 이용 기회가 줄어든다. 나는 더 많은 관광객에게 우리 시설을 이용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IMF 외환위기 때 웬만한 기업의 임원진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자금을 융통하는 게 주 업무였다. 그러나 삼영화학만은 예외였다. 평소 은행 빚에 의존하지 않는 내실 경영에 힘쓴 결과였다.
크게는 사업 경영에서 작게는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빚을 지지 않는다는 철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남의 돈으로 골프를 친 게 내 평생에 세 번을 넘지 않는다. 그것도 공식 초청을 받았을 때뿐이었다. 흔히 사업하는 사람들 스타일이 얻어먹을 때는 크게 얻어먹고 낼 때는 크게 낸다고 한다.
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99퍼센트 남의 신세를 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나는 회사 간부나 직원들과 함께 비공식 오찬 같은 것을 할 때도 내가 직접 식비를 낸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거래처 사람들을 만날 때 크게 대접하지는 못하더라도 계산은 반드시 우리가 하도록 했다. 또 관정교육재단을 찾아오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서 차 한 잔 대접받는 일을 절대 금하고 있다. 오히려 대접을 해 드리도록 하고 있다.
나는 밖에서 누구와 차를 마시든 식사를 하든 계산서는 언제나 내가 먼저 들고 일어난다. 혹시 다른 사람이 먼저 집어 일어날 때도 계산대에는 내가 먼저 간다. 그래서 나는 어딜 가나 구두주걱을 사용하지 않고 신발을 끌면서 재빨리 신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계산을 먼저 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나의 습관은 모든 기회나 이익을 재빨리 먼저 잡아야 하는 현대의 속도 경영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모임에서 구두주걱을 찾느라고 또는 구두끈을 매느라고 천천히 나오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속도 경쟁에서도 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또 하나 나의 철칙은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일수록 나로 인하여 남이 돈을 쓰거나 남에게 신세를 지는 일을 철저히 경계한다. 무슨 일에서든지 나의 어려움이 남에게 간파당하는 순간 나는 패배자가 되기 쉽다.
그런데 세상에는 유명세라는 게 분명히 있는 듯하다. 나는 이렇듯 빚지거나 신세 지는 일을 경계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 왔음에도 그 반대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마산 지역에서 ‘삼영화학 이종환 회장은 골프 치러 가면 점심 한 번 살 줄 모르고, 그린피도 언제나 남이 내게 한다’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 소문이 돌고 돌아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정반대 소문이 나는 걸 보니 내가 이제 유명 인사가 된 모양이군, 허허허…….”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