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의 힘과 정도(正道) 경영-1 ...

내 평생 경영철학 기본은 정도 경영이다.
불법은 물론이고 편법, 탈법을 동원하지 않고 언제나 정당하고
떳떳한 길을 걸으려고 노력해 왔다.

내 평생 경영철학의 기본은 정도(正道) 경영이다. 불법은 물론이고 편법, 탈법을 동원하지 않고 언제나 정당하고 떳떳한 길을 걸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어떤 경우 법 규정 자체가 바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낡은 것이어서 사업 추진의 효율성을 저해하거나 아예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상황에 부딪칠 때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했다. 이런 말을 한 소크라테스의 진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나 또한 그 말이 현실적으로는 옳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러나 내 직관으로 꿰뚫어 볼 때 지금의 법 규정은 머지않아 현실을 반영해서 고쳐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법이 정한 바를 잠시 비켜 가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공사를 하다 구불구불한 길을 바르게 하고, 구부러진 물길을 바로 잡고, 그린벨트에 나무를 한 그루라도 더 심는 일은 분명히 좋은 일이고 합리적 사고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법 규정의 개정을 기다리거나 관계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고 난 뒤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법 상식이다.

하지만 때로는 규정의 개정을 무한정 기다릴 수 없거나 법 절차에 따라 허가를 받을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다. 공장을 빨리 세우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게 되고 공기(工期)를 맞춰야 미리 주문받은 물량을 감당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공사를 할 수 없는 장마가 곧 닥치려고 할 때 등이 그렇다. 이때 나는 조급한 생각에서 먼저 일을 하고 사후 승인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푸느라 실무자들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나고 보면 역시 나의 직관에 따른 결정이 옳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부동산 투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평생 제조업을 하다 보니 공장을 지어야 했고, 공장 지을 땅을 골라야 했다. 물론 입지조건을 먼저 따져 본다. 용도 지정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 지역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산세가 어떤지, 물은 어디로 흐르는지, 길은 어디에서 어디로 통해 있는지, 향후 이 지역에 대한 개발 전망은 어떤지, 그리고 땅 소유 관계와 은행 저당 설정 상태, 가격의 적정성 등을 두루 따진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것은 나의 직관적 판단이다.

이러한 나의 직관은 거의 실패가 없었다. 중간에 개발이 묶이고, 허가가 안 나고 이런 저런 이유로 터만 잡아 놓고 공장을 짓지 못해서 속을 태우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나중에는 뜻하지 않게 최신식 공장을 더 잘 지을 수 있게 되거나 유리한 조건에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나서기도 한다. 결국 땅이나 집은 길게 보아야 한다. 작년에 사서 올해 얼마 남기고 팔겠다는 투기적인 생각으로 샀다 팔았다 하면 낭패 보는 게 부동산이다.

▲ 삼영요업 제2공장 준공식 /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현금 대신 미국에서 원조 받은 PL480 밀가루를 일당으로 줘 가며 재건을 주도했다. 그만큼 정부도 민간도 곤궁한 가운데 있었다. 1970년대까지도 정부는 그런 방식으로 둑도 쌓고 길도 내고 산도 깎았다. 지금도 부실 공사를 ‘밀가루 공사’라고 부르는 게 거기서 유래된 것이다. 그런 밀가루 공사 후에 얄궂은 나무들을 엉성하게 심어 놓은 땅이나 임야를 공장부지로 매입하는 것을 투기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았다. 오로지 공장 터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사둔 땅마다 크게 올랐다고, 재운이 있다고들 한다. 한 수 배우고 싶다고도 한다. 그러나 노력하고 애써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직관에 의지한다. 직관적인 판단이 섰을 때는 일반적인 고려 사항을 조사해 보기도 전에 결정한다. 이를테면 건물을 고르다가 ‘저거 됐다!’ 싶을 때 위치, 개발 전망, 건물주가 팔려고 하는 이유 같은 것을 차근차근 따지기 전에 계약을 체결한다. 그런 사항을 다 따져보고 결론이 나올 때까지 끌다가는 누군가에게로 먼저 팔려버리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한 달, 한 해, 단기간을 보고 사는 게 아니다. 정말 그 땅을, 그 건물을 용도에 맞게 잘 활용하면서 세월이 흐르다보면 고부가가치가 생기기도 하고 나와 인연이 끝나서 다른 임자에게 넘겨줄 때도 있다. 또 오랫동안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머리를 썩이던 것도 한참 돌고 돌다가 나의 직관에 따라 풀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 좋은 예가 경남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에 있는 정곡 신소재 공장 건설부지 문제의 해결이다. 이 부지는 전기 송배전 시설에 필수적인 애자 공장을 세우기 위해 1995년에 함안군으로부터 공장 설립 허가를 받아 부지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태풍으로 인한 수해로 공사가 지연되고 늪지 매립에 따른 침하 현상을 보완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부지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소하천 물길을 바르게 하는 허가를 받는데 시간을 끌고 그 공사를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경계 지역의 농지 소유자와 땅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실랑이를 해야 했다. 업친 데 덥친 격으로 부지 공사 과정에서도 사소한 위반 사항이 나와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조사가 장기화됨에 따라 공사가 1년 반이나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