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늦어도 설립 허가 5년 이내에 건축을 마쳐야 하는데 겨우 3만 평 정도의 부지를 조성하는 데 그친 상태였다. 이 기간을 넘기게 되자 함안군 담당 공무원들이 징계를 당하고 우리와 행정당국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졌다.
문제는 또 생겼다. 5년 전의 전망으로는 자기 애자의 국내 및 세계 시장 전망이 좋았었다. 이러한 전망 아래 마산 도심에 있는 기존의 고려애자 공장을 청정 지역인 함안으로 새 공장을 지어 옮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5년을 끄는 사이 가볍고 값싼 합성고무의 폴리머 애자가 개발되어서 자기 애자의 수요가 급감하게 되었다. 5년 전 자기 애자가 거의 100퍼센트 사용되던 것이 4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따라서 사양화되는 자기 애자 공장을 새로 건설할 필요가 없어지게 됐다. 결국 공장 업종 변경을 추진하고 허가를 받는 과정에 3~4년이 지났다. 그러는 과정에서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8차례나 공장 건설 연장 허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지만 군으로서도 연장 조치의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드디어 2006년 봄에는 군 당국으로부터 공장건설 허가 취소 처분을 받고 말았다. 지금까지 50억 원에 이르는 부지조성 원금은 다 날리고 부지는 아무 쓸모없는 땅으로 전락할 처지가 되었다.
1995년에는 공장 건설 허가가 가능했으나 그 3년 후에는 주변 질랍 늪지가 습지 관찰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제는 한 번 취소되면 다시는 같은 자리에 공장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국제 습지보호를 위한 경남의 람사 총회 유치를 계기로 한 것이어서 사정은 우리에게 더욱 불리해졌다.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함안군 상위 기관인 경상남도에 공장 설립 취소 처분의 취소 청구 심사를 요청하는 길이었다. 함안군의 허가취소 처분이 위법은 아니지만 새로운 첨단 공장을 설립해서 군과 우리가 ‘윈 . 윈’ 할 수 있는 기회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달라고 간청했다.
우리는 강철보다 10배 이상 강하고 10분의 1 이하로 가벼우며 값은 2분의 1 이하인 신소재 복합철강 공장의 건설안을 제시했다. 공창석 경상남도 부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도 심사위원회도 처음에는 냉랭하다가 긍정적으로 기울었다. 경상남도로서도 이미 조성된 부지를 원상복구하기도 어렵고 방치해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결국 마지막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한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려주었다. 불가능을 뒤집은 성공이었다. 우리 행정기관들도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규정에만 얽매이지 않고 민간이나 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할 줄도 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으로 기록하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아니었다. 함안군에서는 6개월의 시한밖에 주지 않았다. 이 시한을 알게 된 복합철강 기술 제공 예정 회사가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운 지분율의 인상을 요구해 왔다. 우리는 다시 시간에 쫓기는 궁지에 몰렸다. 우리 측에서 미국 회사에 대한 설득에 나서 거의 성사가 됐으나 내가 신뢰성 문제를 들어 그 건을 보류시키고 가능하면 다른 업종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이것도 나의 직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시한이 불과 한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초조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내 제대로 된 임자가 나타났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자동차 조립 및 자동차 하치장으로 사용하겠다고 제의를 했다.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함안군에서도 대환영이었다. 결국 우리는 투자 원금에 이자와 물가변동률이 반영된 합리적인 값에 문제의 공장부지를 처분할 수 있었다. 르노삼성도 비교적 싼 가격에 넓고 좋은 장소의 부지를 확보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
함안군도 깨끗하고 고용 효과가 높은 공장을 유치하게 되어서 만족이었다. 이건 ‘윈·윈 게임’이 아니라 ‘윈·윈·윈 게임’이었다. 다함께 이길 수 있다는 나의 직관이 적중한 결과다. 바로 이런 걸 ‘올 윈(All Win)’ 게임이라고 하면 어떨까? 나는 여기서 받은 돈을 모두 관정교육재단으로 출연했다.
말년에 내가 가진 것을 하나 남기지 않고 재단에 알차게 넘길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이러한 직관의 힘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직관을 나의 개인적 부의 축적을 위해서만 활용했다면 정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직관으로 일군 전 재산의 사회 환원을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나의 정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
직관을 나의 개인적 부의 축적을 위해서만 활용했다면 정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직관으로 일군 전 재산의 사회환원을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나의 정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