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구두쇠-2 (66회)

석유왕 록펠러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식당 웨이터, 가게 점원 자리를 전전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가난했던 시절 철저히 근검절약했던 습관이 몸에 배어 나중에 갑부가 되어 호텔에 머물 때도 항상 3등실만 사용했다.

한번은 보다 못한 호텔 지배인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 아들은 언제나 호텔 1등실을 사용하는데 왜 정작 당신은 꼭 3등실을 이용합니까?”

“그에게는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부자 아버지가 없지 않소.”

우리 관정장학생이 록펠러의 아들처럼 했다면 나는 어떻게 답변할까. 록펠러 식으로 하면 이럴 것이다.

“그 애는 장학금을 주는 부자 회장이 있지만 나는 그런 부자 회장이 없지 않소?”

그러나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노벨상을 받는 데 필요하다면 그래도 좋소.”

록펠러에 비하면 나는 사정이 훨씬 낫다. 나는 록펠러처럼 궁핍한 생활을 경험한 사람은 아니다. 시골 중농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성장기를 보냈고 일본 유학 생활도 해보았다. 그러나 학병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내 인생의 좌표가 흐트러졌다.

힘이 없는 나라와 국민의 비참함을 직접 체험했다. 6·25 전쟁 후 대한민국의 창업 1세대로 척박한 산업 환경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푼돈 한 닢의 가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뼛속까지 새겼다. 아마 나와 동시대를 산 경제인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절약은 나에게 의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어떤 행동 원칙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 자체가 됐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호남의 대부호 출신 김성수 선생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김성수 선생이 그날 반찬거리로 두부는 얼마, 콩나물은 얼마 하고 직접 세어서 찬모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 후 나도 지금까지 일주일 단위로 그렇게 하고 있다.

▲ 2006년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로부터 받은 공로패

또 잠깐 운동하고 들어와 땀에 젖은 옷은 손수 바람 잘 통하는 곳에 걸어 말린다. 옆에서 가져다가 빨겠다고 해도 “땀만 마르면 아직 입을 수 있는 옷을 자주 빨아서 뭐 하노, 자주 빨1면0년 도 못 입어요” 하고 극구 말린다.

나는 1960년대 일본에 머물 때 아침 식사는 산보 겸 호텔 근처를 한 바퀴 돌다가 작고 정갈한 우동 집에서 우동 한 그릇으로 해결했다. 우동 집이 문을 열지 않는 휴일에는 호텔 커피숍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먹으면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됐다.

또 돈을 벌려면 구두쇠 소리를 듣지 않고는 안 된다. 내 재산이 대재벌처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삼영화학그룹을 창업해서 빚 없이 키워 드디어 50주년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5월 13일 창업 50주년 및 자서전 출판 기념식을 치르면서 나의 이 같은 구두쇠 경영관이 결실을 이루는 것 같았다. 이 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귀빈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한눈 팔지 않고 50년간 제조업에 매진하여 근검절약으로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쾌척한 것에 대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매우 고마운 생각과 함께 새로운 감회를 느꼈다.

아무튼 나의 구두쇠 경영철학은 아낄 때 아끼고 쓸 때는 쓰는 것이다. 회사 직원들이 볼 때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직접 챙긴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고 시설을 들여온다든지 최고 인재를 데려오고 키우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A급 제품을 사서 고장 안 내고 오래 쓰는 게 C급 제품을 사서 고장으로 골머리 앓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다.

최고 설비를 들여와서 최고 기술자가 움직이게 하며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게 평생 제조업에 몸담아온 나의 일관된 원칙이다. 코앞의 푼돈을 아끼려다 후일에 큰돈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작은 구두쇠는 늘 그러한 우를 범하지만 큰 구두쇠는 그렇지 않다. 큰 구두쇠는 안 써도 될 돈은 100원을 써도 아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꼭 필요한 일에는 1천만 원, 1억 원, 아니 그 이상의 거액도 흔쾌히 쓴다.

큰 구두쇠의 대미(大尾)는 바로 내 사재 8천 5백억 원(2016년 현재)을 관정교육재단에 던진 것으로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노벨은 자기 재산의 94퍼센트를 노벨상 기금으로 내 놓았다. 나는 95퍼센트 정도를 내 놓았다. 누군가 이 기록을 빨리 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