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와 나-3 (69회)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했어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련다’

이런 나의 결심도 록펠러와 닮은 데가 있다. 록펠러가 누구인가? 미국 역사상 최고의 부자다.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비롯한 대기업 그룹으로 세계적 거부 반열에 오르기까지 이글거리는 야망으로 수많은 경쟁 기업들을 자기 발 앞에 거꾸러뜨린 냉혈한이었다.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당대의 손꼽히는 부자 사업가의 경우 그 누구도 천사처럼 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경쟁자들에겐 가혹했고 독과점을 위해서는 공정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어떤 압력도 서슴지 않았고 때로는 폭력까지 사용했다. 정치권 로비와 매수 수완도 능란했다. 오늘날 리베이트 제도가 록펠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그렇다.

또 한편으로는 천사처럼 그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푼 대자선가이기도 했다. 그의 내면에는 어릴 때부터 따뜻한 자비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어린 시절에도 십일조를 생활화했다. 그는 일기에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과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종교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을 정도였다.

록펠러가 악인과 선인의 두 얼굴을 가진 거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내가 기업을 일구던 시대, 즉 대한민국의 1950~1970년대는 영국의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의 말 그대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과 같은 시절이었다. 매 순간 ‘여기서 지면 망한다’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절체절명이라는 말이 그때처럼 뼛속 구석구석 파고든 적이 없었다. 따라서 돈을 버는 데 좀 거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남을 속이는 일은 절대 안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 록펠러 전기 Titan: The Life of John D. Rockefeller, Sr.

기업인은 언제나 신뢰와 신용을 잃으면 끝이다. 남들로부터 ‘지독하다, 짜다’는 소리는 들었을지언정 엉터리라는 말은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경쟁에 진 쪽으로부터 원망을 듣는 경우도 있고, 본의 아니게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변명은 아니지만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창업 1세대 기업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 그러한 지난날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쉽게 말해서 천사처럼 해서는 돈을 벌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록펠러의 양면성을 옳다고 할 수는 없어도 깊이 공감한다.

록펠러가 평생을 마더 테레사 수녀님처럼 아무런 욕심 없이 사회봉사로만 일관한 성인 같은 사람이었다면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나 같은 속인(俗人)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종교적 차원의 일로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록펠러는 달랐다. 그는 세속적인 방법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고, 그 부를 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자선심으로 그 부를 세상에 되돌려 주었다.

미국 전역의 석유 산업을 독점하기 위해 필요할 때는 무슨 일도 서슴지 않았던 ‘악인’ 록펠러와 죽어가는 불쌍한 노인들을 살리려고 뉴욕에 의학연구소를 세워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게 한 ‘선인’ 록펠러가 한 사람 안에 공존한 것이다. 그가 인생 후반부에 이룬 선업(善業)이 더욱 빛을 비추는 것도, 내가 그의 생애에 매료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의 재산 출연은 록펠러를 따라 하느라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더욱 확신을 갖게 해 준 것은 사실이다. 내가 한 것이 이미 록펠러가 한 것과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도 이런 극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하늘에 늘 감사한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관정교육재단이 굳건히 자립해 나갈 수 있는 완벽한 방안을 강구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10년 후, 100년 후까지, 아니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바탕을 충분히 마련해 놓고 가야겠다는 염원뿐이다. 그래야만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는 기쁨도 영원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