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교육재단의 설립 이후 언론에서는 ‘국내 최대 장학재단이다’, ‘최고 장학금 기록이다’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를 했다. 그러나 나는 언론과 회견을 할 때마다 이렇게 나의 생각을 밝히곤 했다.
“그런 소리 들으려고 재단을 만든 게 아닙니다.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입니다. 나는 그 최대니 최고니 하는 기록이 누군가에 의해 하루라도 빨리 깨지기를 바랍니다. 그 기록이 빨리 깨지면 깨질수록 우리 사회가 더욱 훈훈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2002년 4월 나의 3천억 원 사재 출연으로 관정교육재단을 설립한 후 넉 달 만에 대한민국의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에서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출연금을 5천억 원으로 늘려서 국내 최대 장학재단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어서 일반인의 기부 문화도 급속하게 활성화됐다.
내가 그런 문화를 촉발시킨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우리의 최대, 최고 기록도 깨지게 되겠구나 하는 기대도 갖게 했다. 그러나 삼성은 출연금을 우리보다 적게 내놓은 채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다른 일 때문에 재단 재산을 정부로 넘겼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재단이니, 세계 몇 대 재단이니 하는 순위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지금도 진정으로 온 힘을 기울여 추구하는 것은 재단의 영속성이다. 한때 최대 재단으로 주목 받다가도 단명에 그친다면 나의 본뜻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는 관정교육재단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도록 설립자의 유지를 잘 이어가는 튼실한 재단으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하늘로부터 유한한 생명을 부여 받아 잠시 세상에 머무르다 가는 인간으로서 나는 의미 있는 조그만 흔적이라도 남기고 떠나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재단의 재정적인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일에 유난스러울 정도다. 내 나이 일흔에 재산을 사회로 돌리겠다는 구상을 시작했고, 일흔일곱에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그 2년 후인 2002년 4월에 관정교육재단의 출범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릴 때 이미 나는 현금 680억 원과 그때까지 정리할 수 있었던 내 명의의 땅과 건물 등 모두 3,400억 원을 재단에 털어 넣은 상태였다.
그 뒤로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정리해서 재단에 넣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영구적으로 보장될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재단은 영속적일 수 있게 된다.
관정교육재단은 내가 가진 ‘일부’를 떼어내 세운 재단이 아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재단이다. 삼영화학 산하 모든 계열사의 토지와 건물을 재단에 출연했다. 삼영화학 산하 모든 계열사는 토지와 건물의 소유주인 관정교육재단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 매월 임대료를 물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라야 재단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서울 소공동의 삼영화학 본사 건물에서 제주도의 골프장, 호텔까지 거의 모든 부동산이 그런 방식을 거쳐 내 손을 떠났다. 한번 재단에 출연하는 순간, 그것들은 영영 내 것이 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재산 도피, 탈세, 면세, 절세 수단으로서의 재산 기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출연 방식이다.
재산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재원 다음으로 투명한 운영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재단 직원들에게 때때로 재단 재산은 아무도 못 가져간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법률상으로 보면 관정교육재단은 국가 재산이다. 재단 운영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재단을 잘 운영해 나가면 재단은 영구히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건전한 운영에 문제가 생기고 비리가 발생하는 사태가 온다면 국가의 관리 감독청이 개입하여 임시 이사를 파견한다.
그렇게 되면 설립자조차 손을 떼야 한다. 재단의 영속성을 바란다면 그만큼 재단의 건전한 운영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청탁을 철저히 막고 기금의 운영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실오라기만큼도 발생하지 않게 만들어 재단의 대외적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유리알같이 투명한 재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재단의 현금자산은 전액을 제1금융권에 예치하고 있다. 이 또한 재단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원칙이다. 이자율이 좋다고 제2금융권이나 펀드 등에 재단의 돈을 맡겼다가 적자를 보게 되면 재단의 안정적인 수입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제1금융권이라도 부도 경력이 있거나 조금의 부실 의혹이라도 보이는 곳은 거래 대상에서 제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