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교육재단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라도 나라와 인류에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이 줄줄이 나와서 이런 말을 한다면 얼마나 흐뭇할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때는 활자의 빛과 전파의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하는 과학기술도 개발되어 다른 세상에 가 있는 내 눈에 비치고 내 귀에도 들리게 해 줄 것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즐겁다.
이제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나는 관정교육재단이 영구히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마련해 놓았다. 그것은 내가 아니고는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순수한 의지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세금 제도이다.
나는 재단 설립 초기부터 내가 수십 년 살아온 명륜동 집마저 재단에 출연하고 싶었다. 나는 재단으로부터 그 집을 전세로 빌려 머물다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액수의 세금이 이를 가로막았다.
명륜동 집은 국세청 기준의 고급 호화 주택에 해당한다고 했다. 따라서 재단 소유로 등기 이전을 하려면 일반 주택의 다섯 배나 되는 무거운 세금을 물어야 한다. 재단에 그만한 세금 부담을 지우면서 내 고집대로 할 수 없어서 그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계획은 최근에야 비로소 이룰 수 있었다. 낡은 세금 제도로 인한 문제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계열 회사들은 땅과 건물을 재단에 귀속시키고 해마다 재단에 임대료를 물고 있다. 그 회사들 중에는 한 해 수십억 원을 벌어들이는 회사도 있지만 적자가 몇 해째 계속되는 회사도 있다.
그런 사정으로 재단에 임대료가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연간 임대료 예상 수입을 일단 국가에 신고하고 나면, 수입이 줄어들었어도 그차액은 미수금으로 처리된다. 수입이 줄어든 어려운 상황을 헤아려 정상을 참작해 주는 게 아니라 수입에서 고의로 누락시킨 것으로 간주하는 법 적용 방식이다. 과거에 재벌들이 재단을 탈세의 수단으로 이용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사례가 누적되면 장학 사업이 압박을 받게 된다. 수입의 70퍼센트를 목적 사업에 쓰게 되어 있는데 미수금까지 포함된 가상 액수의 70퍼센트를 써야 하니, 그 액수가 실제 수입을 웃도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재단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그렇게 무리해서 예산을 집행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입의 70퍼센트를 목적 사업에 지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재단이 국가로부터 받았던 세금 혜택에 대해 다시 추징당하게 된다. 재단 산하에 적자 사업체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재단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우리의 신고가 정확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새로운 추징은 없었지만 그 과정의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평생 사업 일선에서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에게 엄격한 만큼 나 자신에게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 왔다는 점이다. 재단을 설립하고 나 자신을 남김없이 비우겠다고 결심한 마당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과연 세상에 선언한 대로 내 손에 쥔 모든 것을 철저하게 비우고 있는지 스스로 감시자가 되어 날마다 자신에게 물어본다. 아마 죽는 날까지 그러할 것이다. 내가 살던 집과 전국에 걸친 삼영 그룹 산하의 사업장들을 하나하나 미련 없이 재단 소유로 만들어 온 배경에는 나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자리 잡고 있다.
재단을 만들고 전력을 다해 키워나가는 것은 내 생애의 어떤 사업보다도 즐겁고 자랑스러운 사업이다. 그러나 재단 설립 초기에 주변에서는 “이제부터 고생길입니다”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도 내가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지 그 말을 들으면서 ‘아니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벌어들이는 데도 이만큼 성공했는데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놓는 게 뭐가 어렵단 말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런 데 이제야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고 있다.
나야 한번 세운 뜻은 결코 꺾지 않는 소문난 고집불통이니 한번 들어선 이 길을 끝까지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정교육재단이 이 사회의 기부 문화 풍토를 바꿔놓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후에 있을 더 많은, 더 큰 규모의 재단 출연을 위해서도 그렇다.
특히 부자가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명예롭고 거리낌 없이 재산을 사회에 쾌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가진 자의 사회 기부 행위를 늘리려면 가진 자가 자기 재산을 사회로 이전시키는 데 따르는 시스템의 미비점, 불합리성 등을 정비해 주어야 한다.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점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후진국 수준이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옳은가? 내가 겪은 체험을 중심으로 세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