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사업 관련 세법 개정 -
재단을 설립하고 평생 모아온 부동산을 단계적으로 출연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그마치 200억 원 정도를 세금으로 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조세 원칙이다. 하지만 장학재단의 재정적 기반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소득이 발생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부동산을 재단에 무상으로 내놓는 데에만 그런 거액의 세금을 부담하게 만든 세금 제도를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관계 세법을 알아보니 지방세법에 현금 아닌 출연 부동산에 대한 세제 혜택이 전무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임대용 부동산을 공익법인 설립의 형식으로 아무 사심 없이 사회에 내놓는 것임에도 부동산 취득에 따른 취득세, 농어촌특별세, 등록세, 지방교육세, 법인등기 등록세 등이 재단에 부과됐다. 강제 매입을 해야 하는 국민주택 채권까지 합하니 출연 재산의 거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세금을 현금으로 따로 부담해야만 등기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인재 육성을 위해 나라에 힘을 보태겠다는 순수한 뜻 하나로 내 재산을 공익 재단에 출연하는 것인데도, 증여세만 면제됐을 뿐 일반적인 부동산 거래와 한 푼 차이 없는 각종 세금을 물어야 했던 것이다. 출연 받는 재단의 법인세도 50퍼센트만 면세됐다. 또 출연하는 기업의 경우 출연 재산의 감정가와 장부가 사이의 차액에 대해 막대한 법인세를 부담하게 되어 있었다.
내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데도 일반 거래처럼 막대한 금액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다니, 현금 동원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장학 사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세법이 아닌가? 웬만한 사람은 재단 세우려다가 자칫 잘못하면 빚더미에 올라앉게 생겼다.
불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기부가 어떻게 일반적인 경제 행위인가? 뜻하지 않았던 엄청난 세금을 물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이야 내 개인 차원에서 참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모처럼 재산의 기부에 뜻을 두고 용단을 내린 다른 사람들이 이처럼 과중한 세금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현실에 부딪쳤을 때 중도 포기하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대한민국의 세법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난날에 일부 기업이 탈세의 수단으로 공익재단을 이용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는 재벌이 공익재단을 세운다고 하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절세나 재산 도피의 수단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관련 세법이 강화되어서 공익을 빙자한 탈세 행위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옥석을 가려 설립 목적이 뚜렷하고 공익을 위한 운영 체계에 한 점 흠이 없는 법인은 최대한 면세 혜택을 주어 공익사업을 할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야 할 일 아닌가?
세금 부담은 출연 단계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해마다 부동산 보유에 따른 재산세와 종합토지세가 부과됐다. 2000년에 장학법인을 비롯한 공익법인의 부동산 중 ‘고유 목적 사업에 직접 사용되는 부동산’을 제외한 임대용 부동산에는 면세 혜택을 주지 않기로 지방세법이 고쳐진 데 따른 것이다. 이 세법 개정은 그 이전의 일부 악용 사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기업들이 시대에 역행하는 법 개정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세제를 본받아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는커녕 기존에 있던 혜택조차 없앴다면 그것은 세법의 퇴보이다. 재산의 사회기부와 인재 육성이라는 대의명분 외에는 다른 의도가 전혀 없는 순수 공익재단의 입장에서는 이런 세금 제도를 전혀 수긍할 수 없었다.
실무 검토를 시켜보니 ‘고유 목적 사업에 직접 사용되는 부동산’의 정의 자체에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오로지 장학회 업무에 이용하는 건물만을 ‘직접 사용되는 부동산’으로 인정해 준다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법 적용이 아닌가? 부동산 임대 사업 자체가 장학기금 조달을 위한 것이고, 장학재단의 고유 목적 사업이 바로 장학 사업이니, 재단보유의 임대용 부동산에도 면세 혜택을 주어야 마땅한 일이다. 이것은 결코 나의 아전인수식 법 해석이 아니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를 뒤져보니 2002년 판결에서 같은 해석을 내리고 있었다. ‘장학회 사무 업무에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땅과 건물에 대해서만 면세 혜택을 주고 장학금의 재원이 되는 임대용 부동산은 혜택에서 제외하는 것은 장학사업의 공익적, 자선적 목적에 위배된다’는 취지였다. 장학금 마련이야말로 장학사업의 핵심이 아닌가?
재단의 세법 실무자들도 ‘공익법인이 일반 영리법인과 똑같은 세금을 부담한다면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을 이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익법인이 취득한 임대용 부동산은 투기의 목적이나 사익과는 무관한 것이고, 그 임대 수입에서 발생하는 과실금 전액을 다른 용도에 쓰지 않고, 고유 목적 사업비에 충당하고 있을 때는 그 취득이나 보유 그리고 임대 수입에 대해 세금을 부과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재단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또 있었다. 국세인 법인세 부과에서도 우리 세법은 공익재단의 특수성을 배려하지 않았다. 일반 영리법인세의 50퍼센트만 감면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공익법인의 수입은 대체로 현금 이자 소득과 주식 배당 소득, 부동산 임대 소득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현금 이자 소득은 면세 되지만 은행 금리의 하락으로 면세해 준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임대 소득과 주식 배당 소득에 대한 면세 혜택이다. 우리 재단의 경우 부동산 임대 소득이 주요 수입원이다. 현금이나 부동산이나 단지 재산의 형태가 다를 뿐이다.
현금의 이자 소득은 면세이지만 낮은 이자율로 소득이 작고, 반면에 부동산 소득에 대해서는 일반인과 같은 세금을 납부해야 하니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재원 확충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짜내고 최선을 다해 출연해도 세금이 함께 증가하는 바람에 장학금 규모가 계획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익법인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유 목적 사업 자체를 축소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