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목표에 도전할 때,
그들도 열린 마음으로 화답하고 따라 오리라 믿는다.
‘도전하라 그러면 도울 것이다.’
이는 평생 사업을 하면서 내가 직원들에게 이르는 말이다.
기업 회장쯤 되면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스케줄표가 비서실 차원에서 작성이 되고 회장은 비서가 귀띔해 주는 대로 일정을 소화하는 게 정상이라고 알고 있다. 물론 나 또한 대략의 틀을 가지고 움직이지만, 그때그때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탄력 있게 대처하는 편이라 자세한 일정표를 짜봐야 별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시하고,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게 내 업무 효율을 극대화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평생 내 직분의 기본은 공장장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공장장이 스케줄 따라 움직여서는 그 공장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공장장이 기계 돌아가는 사정에 따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꼭 필요한 장소에 나타나줘야 공장이 제대로 돌아간다.
나의 업무 스타일이 이렇다 보니 불과 몇 시간 뒤에 떠나는 다롄행 비행기 좌석을 급히 알아보거나 며칠 전에 미리 잡아 놓은 비행기좌석을 취소해야 하는 일이 잦고, 성수기 주말 제주도행 비행기 좌석 대기자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놓고 항공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도 생긴다. 항공사 예약 업무 관련 전화번호도 당연히 내 머릿속에 있다.
“오늘 오후 부산행 비행기 좌석 형편이 어떻습니까?”
휴대폰으로 항공사와 이런 통화를 하고 있을 때, 내 이름 석 자와 주민등록번호를 대며 좌석 예약을 할 때, 옆에서 듣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회사 총무부며 비서실은 뭐에 쓰시고 손수 그런 것까지 직접 챙기십니까？”
나한테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한 일로 여겨지다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자기는 큰 일만 챙기고 작은 일은 아랫사람들 몫이라고 여기는 상사는 유능한 상사가 아니다. 작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큰일도 잘한다. 최고경영자도 바닥 일을 알아야 한다. 회계 장부 기장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상사는 부하 직원이 손가락으로 짚어 주는 공란에 결재 도장이나 찍어 주기 마련이다.
결국 회사 돈이 새는 줄도 모르는 눈 뜬 장님이 되기 쉽다. 회계 장부에 허술한 구석이 없는지, 수상한 구석이 없는지 살필 능력도 없이 사인만 휘갈기는 허수아비 상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할 줄 알면서 이야기하는 것과 모른 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실무자는 자기 상사가 어느 쪽인지 모를 수가 없다. 몇 번에 한 번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자재는 단가가 왜 이리 비쌉니까?”
제대로 일하는 실무자라면 비싼 대신에 품질이 높고 오래 간다든지 다른 장점이 있다든지 합당한 이유를 댈 것이다. 적당히 숫자나 맞춰온 실무자라면 화들짝 놀라고 당황해서 우물쭈물할 것이다. 그것을 집어내서 “단가가 평균보다 높게 치이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무슨 결재를 올립니까? 다시 알아보고 올리세요”라고 서류를 되돌려 줄 수 있는 상사가 제대로 일하는 상사다.
때로는 장부 상황이 내 머릿속에 훤히 들어 있는 사안에 대해 실무자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즉각적으로 나오는 답변이 쓸 만하면 그 직원이 하는 일이라면 안심해도 되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덤벙거리며 엉뚱한 숫자를 쏟아내는 직원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은 개선을 촉구하고 기다린다. 그러나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내 인내심은 한계를 드러낸다.
나는 자장면 한 그릇 값이 이 집보다 저 집이 1천원 싼 것까지 기억하고, 사무실에서는 이면지를 활용하라고 입이 닳도록 당부한다. 그런 반면에 명분이 서는 큰돈을 따지지 않고 선뜻 내놓는 적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부자는 잔돈에 짜고 큰돈에 후하다’는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1억 원이 소요되는 예산을 짤 때에는 처음부터 예산 절감의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일에 접근한다. 1억 원이 필요한 일은 알뜰하게 예산을 짜서 9천만 원에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에 9만원 경비를 지출할 때는 소액이라는 생각에 ‘1만 원 보태서 10만 원’ 하는 식으로 일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큰돈은 깎아 청구하고 작은 돈은 부풀려 청구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큰돈이 오가는 일에는 사기 치려 드는 게 아니라는 점만 확인되면 대체로 믿어 주고 반대로 예산 규모가 작은 일에는 허술하게 새어나가는 돈이 없는지 꼼꼼히 따져 본다. 그런 작은 구멍들이 모여서 회사 전체로 볼 때 엄청난 낭비가 생긴다. 큰 구멍은 나중에라도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추궁할 수 있지만 작은 구멍은 원인을 규명하기도 어렵고 책임자를 찾아내기도 어렵다.
가까운 이들은 내게 이런 문제에 ‘초연해지라’고 충고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것이 나의 한계이자 소임일세. 삼영화학은 아직 내가 낱낱이 챙 길 수 있는 규모 안에 있어. 더 커지면 못하지만 아직은 해야 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