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라, 그러면 도울 것이다-1...

나는 평생 혁신적인 것을 추구해 왔다. 또 코앞의 일보다는 멀리 장래를 바라보고 거시적으로 대처해 왔다.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날그날의 호구지책에 급급하기보다는 정미소를 지어 고향의 들판을 다 사들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일했다.

전란 통에 다 깨져버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맨손으로 다시 시작할 때에도 당시로서는 가장 새로운 신소재 플라스틱을 붙들었다. 단순 제조업으로 사업 역량을 다진 뒤에는 포장재로 발전시키고, 또 더 나아가 최첨단 축전용 절연재 필름으로 영역을 개척하며 도약할 수 있었다. 항상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모험하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도전하는 사람은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한다. 내 생애 말년에 중국 다롄 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도 그런 방식을 고수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중국은 일본이 가르쳐 준 중국이다. 이제부터는 진짜 중국과 맞대결하는 것이다.’

사업 초창기에 중국식 관료주의에 대처하는 데서도 나는 역발상으로 도전했다. 말이 잘 통하는 조선족 사회보다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더라도 한족 관리들과 직접 부딪쳐 협상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확하게 내게 필요한 관리, 확실한 관리 그리고 되도록 고위 관리를 만났다. 조선족을 찾아다니며 알음알음 길을 뚫으려 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런 방식을 중국 진출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샤더런(夏德仁) 다롄 시장을 비롯해서 다롄 개발구청장과 한국부장에게 터놓고 협력을 요청했다. 시간을 다투는 통관에 문제가 생기면 직접 세관장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물론 언어 장벽은 조선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한족과 직접 부딪쳐 길을 뚫어나간 것이다. 조선족을 중개인으로 삼는 것은 당장에는 편하고 안심이 된다. 그러나 나중에 돌아보면 지름길을 놔두고 우회했음을 깨닫게 된다.

▲ 2004년 4월 13일, 샤더런 다롄 시장으로부터 명예 다롄 시민증을 수여받았다

중국 삼영화학의 회장실은 서울 소공동의 회장실보다 훨씬 크다. 이제까지 기업 회장으로서 겉치레나 의전 같은 형식에 별 가치를 두지 않고 살아온 나로서는 상당한 파격이다. 사실 이것은 한족을 상대로 한 업무 수행에 필요해서이다. 중국 관료나 기업인들을 영접할 때 중국의 구청장실보다도 협소한 공간으로는 위신이 안서겠다 싶었다.

이것은 허세가 아니다. ‘한국에서 진출한 기업으로서 갖출 만큼은 갖춰 놓아야 일하기 수월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장실을 널찍하게 잡은 것뿐만 아니라 좋은 가구도 들이고 큰 회의용 탁자도 놓았다.

공장이 문을 연 첫해에 탈세 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 초기에 중국 당국에 제출한 자료보다 우리의 실적이 부진해서 세금을 적게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중국 당국에서는 초기 자료를 기준으로 탈세 의혹을 제기하며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이었다. 다롄의 삼영화학 회계 담당자는 아무리 자료를 소상하게 뽑아서 이의제기를 해도 유연성이 없는 중국 관리들에게는 도저히 통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해당 관청으로 직접 찾아가서 이렇게 항변했다.

“초기 자료보다 세금을 적게 낸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 공장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서 실적이 예상보다 적어 생긴 일이니 상황을 참작해 주십시오. 중요한 것은 삼영은 탈세한 사실이 없으며 탈세할 의도도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 법규를 준수하여 중국 정부가 공식 자격증을 내준 회계공무원을 경리사로 채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삼영의 회계 장부는 100퍼센트 그 경리사에 의해 작성됩니다.

그 장부가 잘못됐다면 중국이 공인한 중국인 경리사가 한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장부 작성을 거짓으로 했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확인하고 또 확인한 바로는 실적 부진으로 생긴 일이지 장부에는 한 줄의 의혹도 없습니다. 삼영의 회계 장부를 믿어 주십시오. 우리는 세금을 한 푼도 속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공장이 내는 이익뿐만 아니라 먼 장래에는 공장 자체를 중국 사회에 내놓을 사람입니다. 세금 내는 게 아까워서 안 내겠다는 게 아닙니다. 중국 정부를 돕는 거라면 그 몇 곱절의 돈도 기부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거명예 다롄 시민증을 수여받은 후 관계자들과 기념촬영 없이 더 부과된 세금을 납부할 수는 없습니다.”

어이없이 날아든 세금 추징 고지는 이러한 나의 정면 돌파로 수습될 수 있었다. 내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들도 나의 진의를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