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과 성을 모두 쏟아 부어 재단을 세웠지만 나는 여전히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사업에서 돈을 잘 벌어야 장학금을 지급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장학재단에 추가 출연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늘 골몰한다. 그런 생각은 휴일도 없고 밤낮도 없이 이어진다.
‘노벨재단(Nobel Foundation)’은 1896년에 세워졌는데 1901년부터 시상해 온 노벨상을 100년이 넘도록 유지한 일만으로도 대단하다. ‘노벨재단’은 인류 역사의 발전과 함께 영원해야 할 것이다. 인류의 꿈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관정교육재단’도 출발은 한 세기 정도 늦었지만 ‘노벨재단’처럼 영원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나의 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단의 재산을 가급적 많이 늘려야 하고 보유 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이 영원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해 둬야 한다. 나이 백수를 바라보고 있는 나로서는 촌음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나는 재단 잘 만드는 데 전념할 테니 당신들은 장학금을 똑바로 쓰는데 전념하시오”라고 실무진에게 자주 말한다. 그러다 보니 재단의 설립자면서도 평소 우리 장학생들 앞에 얼굴을 자주 내밀지 못한다. 그것은 또 ‘앗사리(あつさり)’한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과도 무관치 않다. 일본말 ‘앗사리’는 우리말로 하면 맺고 끊는 게 분명하다는 뜻이다. 내가 자란 경상도 지방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앗살하다’면서 좋아했다. 그래서 숨은 후원자가 될지언정 앞에 나서서 생색내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연히 몸에 배이게 됐다. 정말 ‘앗사리’ 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 장학금에는 어떤 꼬리표도 붙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남을 도와주되 결코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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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종환 이사장이 한 장학생이 보낸 감사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출처 /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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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도 사람이다. 우리 재단의 지원을 받은 장학생들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고 내 방에 찾아오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로 마음이 무겁거나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그들이 내 방을 찾을 때면 언제그랬냐는 듯 기운이 절로 난다. 내 입가엔 미소까지 번진다.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나는 여기서 ‘멀리 있는 친구인 그들이 나를 찾아오니까 기쁘다’라기보다 ‘멀리 있는 나를 그들이 친구로 알고 찾아오니 기쁘다’라고 풀이한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 모인 여러 나라의 수재, 천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실력을 겨루고 있는 우리 장학생들이 아닌가? 방학 기간에 모처럼 고국을 방문했을 텐데 다른 친구들보다 나를 먼저 찾아 주니, 내가 그들의 친한 친구가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교육재단을 만들 때 “요즘 학생들은 은혜를 받고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거나 베푼 사람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더욱 기쁘다.
“여러분이 앞으로 세계 1등 인재가 되어 나라와 인류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에게 뭔가 갚을 생각이 있으면 여러분 후배들에게 대신 베풀도록 하시오”라고 타이른다. 그래서 “맘껏 받아라. 그리고 베풀어라”가 관정의 정신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장학금에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나는 우리 장학생들이 세계 최첨단 핵심 연구 분야에 진입하는 데 국적이 문제가 된다면 국적을 바꾸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 조금도 서운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국가 차원을 넘어서 세계와 인류 전체를 위한 1등 인재로의 도약을 진심으로 축복할 것이다. 그들도 뿌리는 한국이고 거기에 관정교육재단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