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정권을 잡았다고 정파적 이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권력을 나누어서야 어떻게 나라가 제대로 서겠는가?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면 정파를 초월해서 그 능력을 가져다 쓰는 하마구치의 열린 사고방식은 정치적으로 귀감이 될 만하다 싶었다.
내가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에게 읽히고 싶은 부분은 더 있었다. 하마구치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자신을 포함한 내각의 급료를 대폭 삭감했다. 또 총리 관사 경비원 수를 줄이고 꼭 사용할 부분만 사용함으로써 관사의 유지관리 비용을 절감했다. 단적인 예로 관사 전기 요금은 자기 급료에서 부담했다고 한다.
이미 말했듯이 이들의 개혁 정책은 대공황의 폭풍 앞에서 실패로 끝났고 하마구치는 도쿄 신바시 역에서 우익 청년에게 저격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 그 몇 해 뒤 이노우에도 지방선거 지원 유세 중에 비슷한 상황을 맞아 비명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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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야마 사부로(城山三郞)의 '남자의 본회(本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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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다시 바뀌고 이전의 정적들이 이 두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려고 샅샅이 찾았지만 두 사람 다 생전에 검소하고 뒤가 깨끗했던지 하나의 비리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1980년대 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이 잘한 일인가, 잘못한 일인가를 따지는 것은 이미 끝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왕에 군 출신이 또 다시 정권을 잡았으면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진정한 구국의 정신이란 어떤 것인지, 이 책을 읽어 제대로 느끼고 애국심과 올바른 국가관의 바탕 위에서 정치를 하라는 뜻을 우회적으로나마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공인(公人)으로서의 판단과 행동이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겠다 싶은 인물들에게 책을 보냈다. 오래 전 일이라 전두환 씨, 노태우 씨, 김종필 씨, 남덕우 씨에게 보냈다는 정도만 기억에 남아 있지만 열두 권의 책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보냈다.
내가 정계에 나갈 생각이 없는 순수한 기업인의 위치에서, 정치가 제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 말고는 별로 없었다. 나중에 김종필 씨에게서만 유일하게 좋은 책을 보내 줘서 고맙다는 편지가 왔다.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서는 단 한 마디 회신도 없었다. 좀 서운했다.
전두환 씨 나이를 헤아려보니 나보다 여덟 살 아래, 중학교 1~2학년 정도 다니다가 해방을 맞았을 터이니 일본어로 된책을 읽기에는 좀 힘에 부쳤을까? 나에게 답장은 안 띄웠을망정 약간이라도 훑어보고 국가관의 기본을 다지는 데에 그 책이 일말의 영향력이나마 미쳤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자위했다.
‘남자의 본회(本懷)’란 남자로서 가진 사나이다운 생각, 느낌을 의미한다. 내가 앞에서 말한 이 책의 주인공들은 ‘본회’에 충실한 삶을 살다가 반대 세력에게 죽음을 당했다. 개인에게는 비운이지만 나라를 위해 살다가 세상을 떴으니 헛된 죽음은 아닐 것이다.
내가 1970년대 초 1차 석유 파동이 일어났을 때 일본 메이지대 동창의 소개로 기시(岸信介) 전 일본 총리를 만나 석유 합성수지 원자재 수입에 관하여 협조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나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 일본 기업과 경쟁 관계에 있는 나를 지원해 주었다. 그것도 ‘남자의 본회’와 같은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자의 본회’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