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관정교육재단’이 출범을 한 후 2016년 현재까지 관정장학생으로 배출된 학생은 모두 5,800여명이나 된다. 국내 장학생이 4,725명, 국외 유학 장학생 1,077명이다. 이미 우수한 성적의 학사는 물론 석사. 박사 학위 취득자가 많이 나오고 박사 후 과정자도 있다.
이미 국내외 대학교수가 되거나 세계적 연구소의 연구원이 된 학생들도 여럿 있다. 앞으로 한두 해 후면 그 숫자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나라 안팎의 관정장학생들로부터 편지가 많이 날아온다. 내가 인터넷을 못 하는 줄 알고 그러는지 이메일보다는 주로 편지를 써 보낸다. 공부 시간을 아껴 정성 들여 보내오는 편지를 읽다 보면 우리 학생들이 여러 학문 분야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우선 국내 장학생들이 국외 유학 장학생들에게 조금도 기죽지 않고 학문적 패기가 넘쳐나는 것을 보고 놀란다.
관정장학금으로 반도체 이후 세대의 신물질 개발에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공학도(서울대 재료공학과 박사 과정 이재익 군)가 그렇다. 대통령장학금을 못 받게 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면서 ‘대통령장학금 보다 관정장학금이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하는 또 다른 공학도(서울대 재료공학부 하동광 군)의 패기도 있다. ‘토종 경영학 박사도 세계적 CEO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겠다’는 고려대의 경영학도(이계혁 군), ‘제2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되겠다’는 연세대 학생(김아름 양), ‘우리 고유의 의술인 한의학의 가치를 세계 의학계에서 당당하게 인정받게 하여 온 인류의 삶을 바꿀 날이 오도록 하겠다’는 허준이나 편작 같은 미래의 한의사(경희대 한의대 김기원 군)도 있다. ‘책값이 모자라 빌려서만 읽다가 최신 원서들을 충분히 구입해서 세계 일류 학생들과도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마음껏 읽고 있다’는 야심찬 지방의 식물자원학도 (강원대 식물자원학과 김은정 양)도 있다.
관정의 국외 유학생들은 더욱 패기가 넘친다. 노벨 물리학상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받는 관정장학생이 될 것이라는 하버드대 물리학과 석사 과정의 장학생, 그 학생은 “홀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시고 저는 하루에 과외를 네 탕씩이나 뛰고 하버드에 들어갔는데 관정장학금을 받게 됐으니 뭔들 못 이루겠습니까?”라고 썼다.
‘양자론을 발전시켜 빛이나 전자와 전파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하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열도록 하겠다’는 MIT장학생, ‘블랙홀이나 웜홀을 이용해서 우주와 우주 사이도 순간이동(Teleportation)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내겠다’는 스탠포드 장학생, ‘모든 인간의 장기(臟器)를 갈아 끼울 수 있게 하겠다’는 존스 홉킨스대의 의공학 장학생, ‘달에서도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생명공학도(이상윤 군), ‘스티븐 호킹 박사를 능가하는 우주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학생,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이 각각 서로 윈윈 게임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다’는 베이징대, 칭화대, 도쿄대 장학생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나는 바로 이런 관정장학생들 가운데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편지 가운데는 가슴 저리게 하는 사연들도 많다.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빚에 몰려 교도소에 가는 바람에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관정장학금을 받게 됐다”는 어느 생명공학도(서강대)의 편지를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올A+ 아니면 A를 받고 있다’는 미국 유학 중인 여학생의 사연을 읽으면 모두가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또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젊은이답게 각양각색이다. 연세대를 다니고 있는 한 학생(정영곤 군)은 관정장학생으로 선정되어 뜻밖의 큰돈을 받게 됐을 때 일시나마 ‘어리석은 혼란’에 빠져 지냈다고 했다. ‘이 돈은 어떻게 만들어져 내게 왔을까, 내가 써도 될 만큼 깨끗한 돈일까? 다른 걸 감추기 위해 마지못해 내놓은 돈은 아닐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한 학기가 지나도록 형식적인 감사 편지나마 한 장 쓸 줄 모르고 망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마음을 바로 잡고 펜을 들었다는 것이다. 대학생이면 한창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빛과 그림자에 예민할 나이가 아닌가? ‘가진 자’에 대한 비판 의식도 높을 때 아닌가? 따라서 자신이 장학금의 수혜자가 된 것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돈이 정당하고 깨끗한 돈인지 아닌지를 의심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검증해 보고서야 믿으려고 하는 젊은이의 풋풋함이 느껴졌다. 이윽고 편지의 결론에 이르러서는 나를 안도하게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것은 그리 넉넉하지 못한 저의 집안 환경에서 비롯된 어떤 열등감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목적을 가진 장학재단 설립자의 본뜻을 왜곡한 것 말입니다. 잠시나마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썼다.
조금 베풀었다고 해서 무조건 감사와 찬사로 가득 찬 편지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로는 이런 진솔한 편지가 오히려 더 마음에 다가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사실 내가 장학금으로 내놓은 돈이 모두 천사처럼 해서 모은 것이라고 강변하지는 않는다. 살 때는 비싸게 주고 팔 때는 싸게 주었어야 천사일 텐데,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장사가 아니고 경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번 비결은 간단하다. 원료는 가급적 싸게 사들이되 물건은 제대로 만들어 제 값에 파는 것이다. 남이 쉴 때도 일하고 남이 함부로 쓸 때 아껴 쓰는 것이다. 남이 잘 먹을 때 덜 먹고 아낀 것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날 보고 구두쇠라고 한다. 그러나 구두쇠라는 말은 백 번 들어도 좋다. 그런 구두쇠는 많이 나올수록 좋다. 현대의 경영 기법이라는 것도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다. 다만 그렇게 번 돈을 무덤까지 갖고 간다면 영원한 구두쇠로 끝날 것이다. 내가 기업 인생을 마무리 하면서 가진 것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련다”는 말을 실천한 것이다.
온 인류가 존경하는 노벨도 한때 ‘죽음의 상인’이란 말까지 듣지않았는가? 폭파와 살상과 전쟁용으로 쓰이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면에서만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장학금은 노벨상보다 훨씬 떳떳하다 할 수 있다. 특히 관정장학금은 더욱 그렇다고 자부해도 좋다. 백합같이 100퍼센트 흰 릴리 화이트(Lily White)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관정장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장학생들도 이제 학업에 더욱 열중하길 바란다. 나라와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세계1등 인재가 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이제 학문 분야의 노벨상도 우리나라에서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장학금은 내가 댈 테니 젊은 여러분은 지식과 지혜와 젊음의 패기를 마음껏 펼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