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2008년 2월 25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나는 5만 명에 가까운 축하객 가운데 특별 초청 인사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아시아 최대의 장학재단을 만들어 세계 1등 인재 육성에 이바지하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취임식 10여 일 전에 이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분이 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와 사회 통합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잘못 찾아온 것 아니오? 나는 조그만 기업인에 불과하오. 큰 경제인을 만나 보는 게 좋을 것 같소.”
“새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제대로 해 나가려면 성장을 위주로 하되 베풂을 병행해 나가야 하는데 관정 선생님이 적격이라 생각해서 찾은 것입니다.”
“빈부 격차나 사회 양극화 현상을 해소한다고 과거 정권처럼 세금폭탄을 터뜨려 ‘가진 자’들로부터 억지로 거둬서 ‘못 가진 자’들에게 나눠 주는 식으로는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가진 자들이 스스로 내 놓도록 하는 분위기와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즈음 세계적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재산의 사회환원도 그런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면 불이익이 없도록 해 주는데 그치지 말고 어떤 이익과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내가 전 재산을 다 내놓다시피 해서 세계 1등 인재 육성을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건의 드리겠습니다. 관정 선생님께서도 이런 일에 계속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제 하지 말래도 할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잘 되도록 잘 보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는 관정 선생님 같은 분이 특별 초청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돌아가서 며칠 지나자 특별 초청장이 왔다. 취임식 날 아침 승용차 편으로 여의도 지하철역까지 갔다. 차는 그 근처에 기다리게 하고 나는 행사장까지 걸어갔다. 9시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취임식장은 축하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10시 정각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고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임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늘 듣던 선서가 오늘따라 왜 새롭게 들리는 것일까? 여태까지 그 선서대로 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취임사가 이어졌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백만 해외 동포 여러분! 이 자리에 참석하신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하여 캄보디아, 일본, 러시아의 총리, 인도네시아의 총리 등의 참석에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과 중국의 경축 사절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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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3월 25일 수상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훈장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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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는 부통령이나 총리급이 아닌 장관급 사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거론할 수 있는데도 빠진 것은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취임식 이후 언론이나 다른 사람들도 이 문제에 관해서 지적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나는 5년 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도 특별 초청으로 참석했었다. 그때는 이번 일보다 더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축 사절’이라고만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미국이나 중국이 우리를 좀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경축을 우리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지적을 굳이 하는 것은 취임사에서 다른 부분은 모두 좋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선진화의 원년을 선포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누구나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소리가 나에게는 가장 우렁차게 들렸다. 취임사는 좀 긴 듯했지만 행사장의 박수 소리와 환호로 적당히 조화를 이룬 것 같았다.
큰 행사는 현장에 직접 참석하기보다 TV 뉴스를 통해 볼 때 더 종합적으로 알 수 있다. 그날 밤 KBS 9시 뉴스에서는 대통령 취임식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여 주었다. 나는 현장에서 본 것과 비교하며 보고 있었다. 취임사 도중 화면은 행사장 풍경을 비춰 주었다. 세 번째 화면이 바뀌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어 크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지만 다른 방에서 보던 아이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중에 알아보니 KBS 카메라 기자가 멀리서 나도 모르게 찍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대에는 경제 성장의 촉진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데 그 이미지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해서 화면 편집할 때 삽입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2002년 장학재단을 만들었다고 해서 TV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2003년 10월 금탑산업훈장을 받을 때와 2009년 3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을 때도 TV 화면에 나왔다. 이후 언론 특히 방송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웬만해선 응하지 않았다. 나의 순수한 뜻이 생색내기처럼 비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중요한 대통령 취임식 뉴스 중간에 그런 뜻밖의 대접을 받다니 어리둥절했다. 더 좋은 장면이 많이 있었을 텐데 송구하기까지 했다.
단 3초 정도 나온 것인데도 밤새 축하전화를 받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국내는 물론 KBS 뉴스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중국과 미국 등지의 친지로부터도 전화가 왔었으니까…….
그러나 그 날의 주인공은 새 대통령이고 중요한 것은 새 대통령의 약속이다. 나의 본의 아닌 조연이 새 대통령의 미래 청사진에 몇 만분의 1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