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판 증보판
나는 자서전 《정도(正道)》를 2008년 85세 때에 출판하고 4년 뒤 2012년 미수(米壽) 다음 해에 개정판을 냈다. 그리고 그 4년 뒤인 2016년 93세에 이 3판 증보판을 낸다. 불과 8년 동안 개정판과 증보판을 출간한 것은 다시 손질하거나 새로 넣어야 할 일들이 제법 있었고, 무엇보다도 《정도(正道)》의 추가 발행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기회에 자서전의 제자(題字)를 한글 정도(正道)에서 한자 正道(정도)로 바꿔 직접 써 보았다. 나의 혼과 체취가 살아 숨 쉬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천재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보다 조금 먼저 내다보고 한 발 앞서나가는 데는 단연 앞섰다. 특히 감사하게도 나의 천부적인 건강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내 사재(私財)만으로 설립한 장학재단인 관정이 종환교육재단의 경영과 운영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내 두 손에 상당한 재산을 가득 채우는 만수유(滿手有)하였다가 세계 1등 인재를 키우는 일에 재산을 다 털고 공수거(空手去)할 수 있게 된 힘도 모두 여기서 비롯하는 것이리라.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의 일반적인 후퇴와 함께 성장세가 꺾이고 있고, 또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률의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작금의 상황을 암울하게 보고 있는 기성세대뿐 아니라 청년과 학생들이 이 《正道(정도)》를 꼭 한번 읽기를 바란다.
이는 나의 성공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 같은 보통사람도 생각의 패러다임만 바꾸면 최소한 나의 인생철학을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4년 전 개정판을 낸 이후 나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다. 2012년 11월에는 경남 의령에 나의 생가가 복원되었다. 전통문화의 재현과 체험장으로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유의 전통미를 살리면서도 천년도 더 갈 수 있게 지어졌다. 이에 더하여 생가에는 송덕비와 흉상까지도 건립되었다. 2015년 2월에는 나의 사재로 건축 헌정한 서울대학교 관정도서관이 개관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의 자산이 이미 8,500억 원이나 되고 장학사업에 사용된 장학금액만 1,800억 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2~3년 안에 재단의 자산이 1조 원으로 확충되도록 나를 비롯한 재단이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그 이후 노벨상을 능가하는 관정아시아상을 창설, 시상하여 장학사업과 병행할 것을 구상 중이다.
이 증보판을 읽고 젊은이들이 나의 도전과 시련과 성공에서 시사점을 많이 발견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전국 국공립 도서관과 대학 및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우선적으로 무상 기증한다. 그리하여 이 《正道(정도)》를 통해 새로운 도전과 창조 정신과 나눔의 정신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재판 개정판
나는 20대 청춘에 작고 보잘것없는 정미소 일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원동기가 힘차게 돌아갈 땐 불끈 힘이 솟았고, 원동기가 멈춰 고즈넉할 땐 더 넓은 세상을 그려보았다. 진국을 큰 솥에서 오랫동안 우려내듯, 더 넓은 세상에서 펼칠 더 큰 사업을 구상했다. 허름한 곳에서 오랫동안 우려낸 구상은 진국이 되어, 내 사업은 늘 더 넓은 세상을 향했으며 더 큰 사업으로 자라났다.
나는 평생 장사꾼으로 살았다. 열심히 일했고, 끝까지 구두쇠 정신을 잃지 않았으며 더러 운도 따랐고 뜻있는 많은 사람이 힘을 더해준 덕분에 돈도 벌 만큼 벌었다. 큰돈은 큰돈답게 써야 한다. 큰돈을 벌었다고, 호사한 일상을 탐하는 건 큰돈에 대한 모독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호텔에서 사람을 만나도 점심은 가까운 시장의 국밥집을 즐겨 찾는다. 국밥은 오래되어 허름한 집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국밥은 관록과 경륜을 자랑하는 큰 가마솥에서 오랫동안 우려내야 진국이 된다.
큰돈을 큰돈답게 쓰는 것은 큰돈을 버는 것보다 어려운 문제였다. 나는 오래된 국밥집 큰솥에서 진득하게 진국을 우려내듯, 어려웠던 시절의 나로 돌아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세상에 올라 참으로 오랫동안 골똘히 큰돈을 내려다보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진국이 되었다.
나는 2000년에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정말 잘한 일이다1. 0억 원 출자로 시작해서, 지금은 6,500억 원 규모로 자라났다. 처음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재산이라 갈등도 많았지만, 점차 내 재산을 가장 값지게 쓰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어 전 재산을 내놓은 결과이다. 심지어 내가 수십 년 살던 주택까지도 임대 빌딩으로 재건축하여 재단 살림에 보태도록 했다. 그리고 여전히 열과 성을 다해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기업 경영의 목표는 수익을 올리는 일이다. 나는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여 관정장학기금에 보탤 계획이고, 그 계획은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오히려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추진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나는 세계지도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의 지원 덕분에 수백 명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전 세계의 내로라 하는 명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번 돈으로, 지금 꿈에 부푼 젊은이들이 큰 세상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흐뭇한 일인가.
나는 영원히 살고 싶다. 비록 육신이야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신기루처럼 걷히더라도 대한민국의 번영을 갈망하는 내 혼만큼은 이 땅에 영원히 남아 있고 싶다. 내 이름을 단 재단 출신의 젊은이들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그 젊은이들 가운데 몇몇이 대한민국을 세계만방에 드높이는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꼭 보고 싶다.
재단설립 과정과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내 삶을 세세히 적어 이미 자서전을 내놓은 바 있다. 다시 읽어보니 더하고 싶은 말도 있고, 덜어낼 말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래서 군데군데 고치고 더해 개정판을 다시 내놓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내 삶을 기록하는 일에 그만한 까닭이 있으니 무방하리라.
이 자리를 빌어 개정판을 내는데 애써준 장남 내외와 모든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