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택 회고록 "흐르는 물과 같이"
 

“운명은 있는가?”
 
필연은 우연을 가장해서 온다던가.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회고록을 읽고 나면 꼭 드는 생각이다. 운명론자냐, 아니냐를 떠나서 말이다. 김윤택 선생의 <흐르는 물과 같이>는 순간순간 불확실 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지만(인생은 그런 것이지만), 한 단락이 끝날 때는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필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물론 그때 어디에 있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전혀 다른 항로를 갈 수 있음도 확인 하게 된다.      
 
김윤택 선생의 삶은 한반도 분단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 개개인의 삶은 시대와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와 개인의 의지가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직조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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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비교적 그 시대 보통의 삶을 살았던 선생은 한국전쟁 때 혈혈단신 월남하며 결코 평범치 않은 삶이 직조된다. 싫건 좋건 그의 인생 전반은 한국전쟁, 그로 말미암은 분단에 포섭되었다. 이는 꼭 성공과 실패, 행ㆍ불행만으로 따질 일은 아니다. 
 
고향과 가족과의 생이별로 선생은 평생 회한스런 삶을 살면서 기업도 일구고 재산도 꽤 모았다. 그러나 회고록은 입지전의 스토리탤링보다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끌어 간다. 그런 점에서 보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그 시대, 그 환경에서 열심히 살았다는 평이한 내용일 수도 있겠다.  

 
20세기 최대 비극 한국전쟁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의 기업가들 중에는 이북출신이 많다. 그것은 남한사람들이 대개 고향을 등질 필요 없이 살아온 땅에서 (산업화 이전 시대에서)농사 짓고 안주했다면 월남자들은 고향도, 안주할 땅도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월남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장사를 하거나,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 빠르게 전환되는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운명은 환경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김윤택 선생의 회고록 <흐르는 물과 같이>에서는 피난민의 환경이 운명을 결정 지어가는 큰 요소였다는 것이 두드러지게 다가온다. 
 
 
   
 
그밖에 두 가지 점도 흥미로운 내용이다. 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대개 지주 출신이 많다는 것과, 피난 나올 때 ‘잠시 피했다 오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전자는 김일성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토지개혁 등으로 지주들이 북한정부와 불화했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누구도 피난할 때 60년이 넘는 지금까지 고향과, 가족과 생이별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윤택 선생은 평생 회한을 품고 살아왔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다. 월남자들이 갖는 특유의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도 그리 크지 않거니와 굉장히 절제되어 표현하고 있다. 오히려 <이북5도민회> 등을 통한 애향사업을 활발히 함으로써 그 분노와 한을 포용하고 있다.

서두에서 운명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언급했거니와 선생의 삶에서는 행운도 느껴진다. 
 
'흐르는 물과 같이'가 실향민 삶의 전범(典範)은 될 수 없지만 근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랄 수 있는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실향민의 삶을 깊게 천착할 수 있는 회고록으로서 큰 의미는 있다고 하겠다. 감수성이 풍부한 선생은 문학 취미가 있었고 조예가 깊었다. 그동안 100 여편의 시와 수필을 썼는데 30여 편을 엄선해서 회고록 말미에 부록으로 엮었다. 그 글들도 수준급이고 알차다. 

김윤택 선생의 회고록 흐르는 물과 같이는 그래피스의 콘덴츠를 제작하는 <투데이미디어>의 첫 출판작이다. 말하자면 출판사 창립작품인 셈이다.  
이전에 다큐멘터리 영화로 선생의 삶 전반을 기록했는데, 2005년 선생이 팔순을 맞아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해서 비매품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김윤택 회고록 '흐르는 물과 같이' | 투데이미디어출판사  2005. 11. 10. 
페이지 499  |  판형  신국판  
 
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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