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하는가?”
허형구 선생의 '어느 법조생의 추억'은 ‘운명의 개척’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회고록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먹기에 달렸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기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노력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주어지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곧장 정치, 사회 체제와 공정한 제도 여부를 대입하기 십상이지만 우리는 은연 중에 '노력'이 어떤 일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요소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결코 노력이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었다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만큼 운도 따랐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형구 선생의 회고록은 운명은 그 자신이 주체이고, 따라서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자신에게 환원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한 일생을 보면 성공이든, 실패든 그 결과 이전에 어떤 분기점이 있다. 서정주 시인의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구(詩句)처럼 말이다.
일제강점기. 지금과 달리 그 시대에 중학, 고등학교의 학업을 잇는다는 것은 웬만큼 집안 환경이 좋아서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허형구 선생의 성장기를 불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군수물자 공장에 취업한 허형구는 처음에는 농업이 아닌 공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도 갖지만, 회의하기 시작한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존재를 확인하고 고뇌하는 것이다. 결국 공부를 해야겠다고 열망하지만 벽이 가로 놓여 있다. 이때가 허형구 선생 인생의 주요 분기점이 아니었을까?
끊임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
그리고 욕망... 그것은 발전의 원동력
그는 탈출을 감행한다. 공부를 하기위해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허형구는 무단가출을 해 경성으로 올라와 공부를 모색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거리의 부랑아 같은 신세가 되어 결국엔 형에게 잡혀 다시 귀향한다. 그렇다고 공부에 대한 집념까지 같이 귀향한 것은 아니었다. 허형구는 독학과 사범학교 학업으로 교사가 된데 이어 법조인으로의 입신을 꿈꾼다.
그는 법학 고등고시 공부를 시작하며 이렇게 기도한다. ‘시험 볼 때까지 건강만 지켜주십시오. 그 다음 노력은 내가 하겠습니다!’
그는 법조인이 되었고, 검사로서 승승장구한다. 검찰의 꽃이라는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차장을 거쳐 1980년 허형구 검사는 검찰 최고 자리인 총장에 오른다. 그런데 총장 임명도, 사직도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다. 총장 임명될 때는 신군부와 협조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는데, 사임은 ‘저질연탄사건’ 수사와 관련해서 전두환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옷을 벗어야 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불편부당한 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압력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 강한 어조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결국 1988년 노태우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명예를 회복하며 선생은 법조인으로서 여한 없이 갈무리를 했다.
그 후 선생은 법무법인 사무실을 냈지만 변호사 활동보다는 사진촬영 등 취미활동을 하며 인생의 황혼기를 유유자적 하고 있다. 사실 취미도 그렇거니와 선생은 끊임없이 무엇인가 탐구하는 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 점에서 이 회고록의 출판도 선생의 노력의 산물이다.
허형구 회고록 '어느 법조생의 추억'은 내용도 그렇거니와 출판도 약식으로 제작되었다. 이전에 투데이미디어가 선생의 전반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는데, 그 스토리보드를 기초로 해서 회고록 형식으로 고쳐 쓴 것이다. 이는 선생이 회고록으로써 공유하거나 작품적으로 의미를 두기보다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기록한다는 데만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투데이미디어가 출판한 책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내용도 빈약하거니와 편집, 인쇄, 제본 등 출판 일체 또한 선생이 직접 발품을 팔아 제작함으로써 아무래도 조악한 책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자기의 기록'이라는 것이 꼭 세련되고 높은 퀄리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툴더라도 얼마나 진솔한 기록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아가 이 회고록은 직접 발품을 팔면 부담없이 회고록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범이 될수 있다고 본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내고 싶어도 발생하는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뜻을 접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형식의 출판을 권장한다.
글 /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