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좋은 책의 제 1조건은 좋은 내용이다. 그 후에 편집도 있고, 디자인도 있다고 하겠다.
한 삶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에 있어서 좋은 내용, 나쁜 내용은 없다. 내용 자체를 진솔하게 서사(敍事)하면 좋은 내용일 것이다. 회고록이 읽히지 않거나 몰가치한 평가를 받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교과서적인 기술, 자기 미화가 회고록을 평가절하 시키는 기제다.
회고록이 위인전처럼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여러 의미가 있지만 회고록은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한번 사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누구든 인생은 어쩌면 실수투성이인지도 모른다. 회고록은 부끄러운 일, 자기의 약점까지도 과감히 고백하는 장이다. 회고록이 마치 위인전처럼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좋은 회고록이 아니다.
한정훈 선생의 ‘서암무지개’는 그런 점에서 독자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회고록이다. 이야기 또한 스펙타클하고, 문학적이면서, 현장적인 문체가 잘 배합된 책이다. 뿐만 아니라 편집도 평가할 만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회고록의 편집은 깨알 같은 서체에 딱딱한 인상을 면치 못했고 가독성도 좋지 않았다. 서암무지개는 사진을 최대한 적절하게 삽입해서 시각적 딱딱함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읽은 재미와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지금 회고록을 내는 세대는 사진이 그리 풍부하지 않지만 일생의 사진을 쭉 펼쳐놓으면 그 사람의 삶이 그림처럼 보여 진다. 이제 회고록은 사진을 어떻게 내용과 합치시켜 편집하느냐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외줄타기 같은 도전으로 점철된 청년기의 신산스런 야망의 세월... 인생은 그런 것인가?
한정훈의 삶은 그야말로 ‘야망의 세월’이다. 특히 그의 청년기는 마치 외줄타기 같은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다.
일제시대 평양의 <자동차공업사.에 취업하며 일찍이 공업에 눈을 뜬다. 만주로 건너가 교통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선배가 장사를 하는 중국 지난으로 간다. 조선의 청년들을 징병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때라 신징까지 가는 동안 일제 헌병으로부터 수 없는 위기를 맞지만 한정훈은 그때마다 용케 피하며 무사히 지난까지 간다.
한정훈은 지난에서 담배도매상을 해서 큰돈을 모아 일제의 눈을 피해 금의환향한다. 해방을 맞아서는 인민군 여단공사에 참여하며 건설에 눈을 뜨고 한국전쟁 중에는 건설사를 창업해 평양에서 미군비행장 공사로 큰 돈을 번다. 그러나 중공이 참전하며 1.4후퇴를 할 때 한정훈도 월남한다.
사업가적 기질이었을까? 남한에서도 도전과 응전으로 기업을 일구지만, 그의 가슴에는 돌덩이 같은 응어리가 있다. 북에 두고 온 아들 딸이다. 게다가 막내 딸은 그가 월남할 때 채 태어나지 않는 뱃 속의 막달이었다.
꿈이라서 잊을 수 있을까, 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들
애비로서 자식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자괴감... 언제나 통일이 될까? 이제나, 저제나 귀향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난망하다는 것을 안 한정훈의 삶은 80년대부터 북에 두고 온 아들과 딸을 만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절박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가. 한정훈은 북으로 가서 아들과 딸을 만난다. 남북이산가족 만남이 아닌 개인적으로 이북으로 가 가족을 만나는 것이다. 월북이 아니면 사실상 금단의 이북 땅을 밟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데서 독자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것이 이 회고록을 읽는 또 하나의 백미다. 그런 점에서 한정훈 회고록 서암무지개는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북의 아들과 남의 아들이 만나서 형제의 정을 나누는 이야기에서 통일의 단초와 미래가 읽혀지기도 한다.
한정훈 선생의 ‘서암무지개’는 2008년 투데이미디어가 출판했다. 많은 독자들로부터 감동 깊게 읽었다는 평가를 받는 회고록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MBC 등 방송국에 드라마 제작을 권유하고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스토리의 '국제시장'이 영화로 만들어지며 그 희소성이 퇴색한 감이 없지 않다.
한정훈 회고록 '서암무지개' | 투데이미디어출판사 2008. 12. 23
ISBN | 978-89-961830-2-0 (03990).
페이지 285 | 판형 신국판
글 /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