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아테네까지는 비행기로 약 7시간이 걸렸다. 밤 10시경에 아테네 공항에 내리니 공항의 규모로 보아 우선 독일이나 영국과 비교가 안 되게 빈약했다. 버스 편으로 시내에 들어가 호텔을 정한 것이 11시 30분경. 다시 거리로 나가 식당을 찾아들어간 것이 12시.
통금이 없는 것을 신기해하며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관광버스 편으로 아크로폴리스 신전을 보러 떠났다. 곳곳에 소철나무와 종려 등 온대식물들이 울창한 것을 바라보며 남구(南歐)에 왔음을 실감했다. 허다한 신화와 전설을 안고 있는 아크로폴리스 신전은 표고 156m의 바위언덕 위에 웅장한 모습으로 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이곳은 옛날에는 요새, 또는 종교의 중심지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 당시 사람들의 숭배 대상은 아테네여신[守護神]이었고, 그 여신에게 바친 거룩한 신전이 이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세워졌던 것이라고 한다. 그 중 가장 훌륭한 건물이 바로 파르테논, 에렉티온 등의 신전인데 당시의 대정치가 페리클래스를 장(長)으로 해서 BC. 5세기 후반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파르테논신전은 고대 희랍 건축 중에서도 가장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희랍역사의 황금시기로 불리는 페리클래스 시대의 상징으로 손꼽힌다.
당시에 뽑힌 건축가와 조각가의 두뇌와 기술에 의하여 완전미를 자랑하는 이 신전은 아테나바르테노스 여신에게 바쳐졌던 것이다. 지금은 무참할 정도로 파손되었으나 이 신전 앞에 섰을 때 장대한 구성과 완벽한 조형미에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신전을 건조할 당시 사람들의 종교와 신앙에 대한 순수한 자세가 눈앞에 어리는 듯 하여 석양을 받으며 우뚝 솟은 아름드리 대리석 원주를 어루만지며 아득한 외경의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이 신전 마당에는 크고 작은 무수한 돌들과 대리석 파편이 널려 있었다. 관광객들의 발끝에 채이고 밟히는 이 돌멩이 하나하나가 역사의 증인인 듯 생각되어 파편 하나를 주워들고 돌아오니 고대 희랍사람들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 나라는 양질의 대리석이 풍부하게 산출되어 건축가들이나 조각가들은 천혜의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희랍, 이탈리아 등 남구지방(南歐地方)에는 대리석이 흔해서 웬만한 건물에는 계단층계까지 모두 대리석을 쓰고 있고, 심지어 어느 관광지에서는 비탈진 곳의 옥외화장실을 오르내리는 계단을 대리석으로 깔아놓아 고급석재가 귀한 우리나라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럽기 한량없었다.
다음날 다시 아테네의 서북방 160km 거리에 자리 잡은 델피 신전을 보기 위하여 버스 편으로 떠났다. 이곳은 바위산을 등에 업고 해협을 감상할 수 있는 절정에 위치해 있다. 유적으로는 고대 극장, 스타디움, 박물관 등이 있다.
편도 약 4백리의 아스팔트길을 달이며 이 나라의 토질이 그다지 비옥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길 주면에는 줄곧 메마른 개천바닥과 붉은 진흙밭이 연속되어 황량한 인상을 자아냈고, 좌우의 산들은 뿌연 석회질 자갈들로 뒤덥혀 나무 하나 자란 것이 없었다. 겨우 눈에 띄는 것이 띄엄띄엄 있는 초가집들과 빈약해 보이는 목장 정도였고, 도중에 있는 상점 마을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편물과 모피 정도가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벌[養蜂]을 치는 것이 생업의 수단인 듯 늦가을인데도 벌통을 산모퉁이에 수십 통씩 늘어놓고 있었다.
아테네 시내네 있는 박물관은 그 규모나 시설면에 있어서 차라리 대영박물관 희랍실을 먼저 보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할 정도였다. 다음 날 정오 경 택시로 아테네 국제공항에 나갈 때 오른 편 종려나무 가로수 사이로 망망한 바다가 펼쳐졌다. 그 바다 저 편이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운전사가 일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