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한 나절을 베니스에서 보내고 제네바로 향했다. 밀라노에서 갈아탄 기차가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을 향해 완만한 고갯길을 달리고 있었다. 약간의 비가 내리고 개인 오후, 이 일대의 경치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이었다. 차츰 산협을 끼고 골짜기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터널의 연속이었다. 왼편은 기암절벽, 누렇고 붉은 단풍이 장관을 이루었고, 오른편으로는 작고 큰 호수들이 거울처럼 펼쳐져 정말로 희한한 풍경화를 보는 듯했다.
여기가 알프스의 길목인 듯 문득 우리나라 설악산의 가을을 연상하며 잠깐 향수에 젖을 때 기차는 어느덧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역 도모도솔라에 멈추었다. 차창 밖 상록수 숲 사이로 보이는 만년설을 정상에 이고 우뚝 솟은 몽블랑의 연봉들, 산허리에 걸쳐 오고가는 구름들은 태고의 정경 그것이었다. 역시 세계적인 대경관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제네바는 깨끗한 도시였다. 그동안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들러보았지만 그렇게 잘 정돈되고 깨끗한 곳은 처음 보는 듯했다. 거리에 늘어선 빌딩들이나 쓰레기 하나 없는 보도, 그리고 시가를 달리는 차량들까지도 유난히 청결해서 길거리에 담배꽁초도 함부로 버리기 미안할 정도였다.
더구나 시 중심부에서 지척에 있는 레만호는 그야말로 관광국 스위스의 면목을 한층 돋구어 주는 정취 넘치는 존재였다. 백조와 갈매기가 떼지어 노니는 잔잔한 레만호, 가로수와 낙엽들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초겨울의 제네바, 안정과 평화를 마음껏 누리고 사는 영세 중립국 스위스.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은 얼마나 행복할까? 거리마다 활기에 차 보이는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럽기 그지 없었다.
최종 목적지 파리에 가기 위해 마음이 급해지고, 그리하여 스위스와 독일의 국경도시, 바젤과 퀼른은 잠깐씩 들르기로 했다. 바젤은 상업도시이긴 하지만 유명한 미술관이 있고, 도시의 분위기는 스위스의 땅이면서도 독일 냄새가 더 풍기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바젤미술관에는 세계의 평화와 조각들이 고대에서 현대에 걸쳐 막대한 양이 진열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