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말에 우연찮게 목포에 간 일이 있다. 목포경찰서 사법주임으로 있던 정재현(鄭宰賢) 경부가 이당 선생에게 부탁하여 나를 목포로 초대한 것이다. 지금은 도사(道士) 서예가로 통하는 정씨가 그 무렵엔 그림에 심취해 있었다.「선전」에도 몇 차례 출품했지만 성적이 부진해서 그림지도를 받을 생각으로 나를 청한 것이다.
나는 목포가 초행이 아니었다. 같이 그림 공부한 친구인 취당 장덕(翠堂 張德)이 결혼할 때 들러리를 서기 위해 내려간 일이 있었다. 그때 남국(南國) 목포의 인상이 아주 좋았을 뿐 아니라 ‘목포의 눈물’로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던 당대의 명가수 이난영(李蘭影)의 고향이기도 해서 흥미를 갖고 있던 차에 정씨의 초청에 응했던 것이다.
목포역에 도착하니 별천지에라도 온 것 같았다.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쌀가마가 왔다 갔다 하고 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켜 먹었는데 육회가 수북하게 올려 있어 놀랄 정도였다. 그 당시 서울에는 쌀과 고기가 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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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 목포 선창 / 용당 도선장 부근으로 당시 목포의 풍요로움이 인파로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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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씨의 주선으로 일본요리집인 ‘히사고’ 뒷채 2층 방에 머물렀는데, 집은 크고 좋지만 숙박시설이 아니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한적한 2층 뒤쪽 방을 쓰자니 물 한 그릇 얻어먹기조차 힘들었고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아침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들을 자는 통에 조반은 한 번도 제때에 들지 못했다.
정씨 역시 경찰서 일과 사사로운 사업들 때문에 바빠서 그림 공부에 전념하기 힘들었고 손님대접도 시원치 않아 나는 매양 취당과 어울리며 여러 친구를 사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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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년 목포 오거리 / 현 기업은행에서 오거리, 목포역 가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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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지법(木浦地法)에 있던 문승모(文昇謨) 판사도 그 무렵 알게 되었는데 문 판사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위였고 점잖았으며, 교회 장로인 서민호(徐敏鎬) 씨도 교양 있는 신사인데 그때 알게 되었다.
서양화가 문원(文園) 씨와도 자주 어울렸고 한국인으로는 ‘후세(布施)’라는 창씨명을 가졌던 경성일보 목포지국장과는 몇 차례 술자리를 같이 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유달산에 올라가 다도해를 바라보면서 ‘마르세이유 같이 생겼다’며 감상에 빠져 눈물을 흘린다는 낭만파이다.
남농(허건)과도 간간이 만나 그림 이야기를 나눴는데 왠지 나와 남농 사이를 취당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 좀 불편했다. 취당은 일찍이, 서울 안동교회의 독실한 신자로서 합창단원으로 활약했는데 그가 결혼할 때 김우현(金禹鉉) 목사는 주례로, 이당 선생은 상객, 나는 들러리로 호남선 침대차를 타고 목포까지 내려갔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