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에 두 번째 입선한 작품 ‘청춘일기’를 그릴 때였으니까 1941년 가을이었던 것 같다. 나는 현초(이유태)와 함께 명륜동 일인 자매 집 2층 화실에서 혜화동으로 이사했다. 그때만 해도 동소문일대는 모두 앵두밭이었는데, 그 무렵 서울은 한참 2층 집을 짓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넓은 장소를 찾아 신축건물인 혜화동 2층 집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20평 남짓한 방으로 현초와 나, 둘이 화실로 쓰기에는 넉넉했다. 얼마 후 현초가 일본에 가게 되어 아랫목도 내 차지, 윗목도 내 차지였다.
늦가을이어서 기온이 차츰 내려가더니 난로도 놓지 않았는데 첫 추위가 들이닥쳤다. 매트리스도 없는 마루방 맨 바닥에 요를 깔고 얇은 이불 한 장을 덮고 자면서 작품 제작에 열중해 피로가 쌓인 탓이었는지 갑자기 어깨가 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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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실(畵室) 1943년 / 227*182cm, 호암미술관 소장 (22회 선전 창덕궁상 수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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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이 심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동네 개인병원에 가니 의사는 결리는 어깨에 주사를 놔주었다. 이만하면 낫겠지, 싶었는데 하루 밤을 자고 나니 병세가 더 악화되어 아예 몸 전체를 가눌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마침 도동(挑洞)에서 약종상을 하던 숙부가 왔다가 이 꼴을 보고 한참 놀라 돈암동 종점에 사는 둘째 누님에게 알려 누님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누님은 내 꼴을 보고는 당장 차를 불러 누님 댁으로 데리고 갔다. 추운 탓이라고 생각했던지 온돌방에 불을 지피고 아랫목에 나를 뉘였다.
추운데서 거처하다가 갑자기 뜨거운 곳에 와서인지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일어나고 눕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이때 마침 이웃에 경성여의전에 다니는 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그 학생이 문병 차 들어와 보고 ‘사르소브로카농’이란 정맥 주사약을 구해다 놓아주었다.
한 밤중이었는데 주사바늘을 빼자마자 온몸이 경련이 일어났다.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그 학생과 누님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우가 병원 문을 두드려서 왕진을 청했다. 사정을 들은 의사는 “가보나 마나다. 운이 없으면 죽었을 거고 운이 좋으면 돌렸을거라”면서 왕진을 거절했다고 한다.
명이 길었던지 나는 한바탕 경련을 일으킨 다음 차차 정신이 들었다. 날이 밝자 누님과 아우는 나를 관훈동에 있는 김사일(金思馹) 내과에 입원시켰다. 이 병원에서 건성늑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 달 남짓 입원치료를 했다.
연일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며 사경을 넘나드는 고비를 넘기고 차츰 회복되어 퇴원하여 외사리 집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빠른 속도로 건강을 되찾고 다음해 이른 봄 서울로 올라와 활동을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