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우리 집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가끔 드나들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이 여유 있는 편이었고 아버님은 한학자이면서 의학과 감여학 그리고 초능력적인 술수 같은 데에 흥미를 갖고 계셨다. 그래서 천하의 기인(奇人), 이인(異人)들이 간혹 찾아왔다. 나는 집에 드나드는 손님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는데 특히 인상적인 손님이 두 분 있었다.
한 분은 이보(耳報, 神(신)과 접해서 대화로 미래를 내다보는 일)의 달인이라는 주금원(朱錦園)이고 다른 한 분은 힘이 장사라는 김소소(金笑笑)다. 주금원은 우리 동네에 이사와서 사는 분으로 체격이 작으면서도 정갈한 선비모습의 신사였고, 김소소는 강원도 홍천에 사는 분으로 키가 크고 몸이 수척한 편으로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도 경어를 안 쓰고 거침없는 농담을 거는, 늘 웃는 얼굴의 낙천적인 분이었다. 나는 그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소문을 듣고 비상한 관심으로 대하였다. 이 분들에 관한 실화를 들은 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자 분의 체험담에 의하면 주금원은 미래를 꿰뚫어 내다보는 능력을 가져 세상만사에 항상 자신만만했고 많은 사람들은 이 분에게 매달려 어려운 일을 해결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 불미한 거래도 따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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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월전 장우성 (1980년대) / 사진출처 김달진미술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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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 제자가 선생 옆을 지키고 있었다. 선생이 누워서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문밖 처마 끝에서 작은 목소리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선생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자 가까운 창문 밖으로 내려와서 조금 더 큰 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다. 선생이 깜짝 놀라 일어서자 그 말소리는 사라지고, 선생은 맨발로 뛰어나가 집 앞 향나무 밑에서 한동안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맥이 빠진 모습으로 방에 돌아왔다고 한다.
제자가 사유를 물으니 “응, 어디를 다녀온다고 하는군” 이라고 말했지만 이날 그가 신봉하는 신(神)은 무슨 이유인지 작별을 고한 것 같다고 한다. 그 후 주금원은 풀죽은 보통사람이 되었다.
김소소는 50대의 중년이었는데 젊을 때 절에 들어가서 차력(借力) 공부를 했다고 한다. 차력이란 다른 힘을 빌어 역사(力士)가 되는 일인데 약차(藥借)와 신차(神借) 두 가지가 있다. 김소소는 어떤 차력을 공부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힘이 장사인 것은 틀림없었다.
홍천(洪川)에서 이웃에 같이 살며 많은 것을 체험한 친구 심송사(沈松史, 우리 이웃에 살았음)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힘이 장사이면서도 절대로 힘을 보여주는 일이 없고 누구와 다투는 일도 없으며, 무슨 화나는 일이 있으면 허허 하고 웃어버린다고 한다. 직접 지은 그의 아호(雅號) ‘소소(笑笑)도, ’세상 사람들은 나를 비웃고 나는 세상을 비웃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심송사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어느 가을 몇 명의 친구들과 낚시를 하고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어귀에서 술에 취한 불량배들이 길을 막고 행패를 부리더라는 것이다. 달래도 소용없고 거의 봉변을 당할 판인데 절대로 실력을 보이지 않던 김소소가 갑자기 긴 대나무 낚싯대를 거꾸로 잡더니 그 주정꾼의 사타구니에 넣어 휙 던지니까 그 주정꾼이 공중에 높이 떠서 그 앞 수수밭에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사람은 다치지 않았고 일행은 집으로 돌아갔다. 가느다란 낚싯대로 사람을 떠 던지는 것은 장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고 김소소 최초의 무용담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