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극동 한 구석에 위치한 조그만 반도다. 그러나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어 세계 문화권에서 뛰어난 존재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단일 백의민족인 우리는 태초부터 생래적으로 순박한 체질과 단순한 정서를 지니고 있어 우리 조상들이 창조한 문화예술은 도자기든, 서화든, 조각이든, 건축이든 고유의 심성(心性) 그대로가 반영되어 그지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비서(碑書)는 그 순박하고 치졸해 보이는 필치가 고구려의 순결무위한 성정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겠고, 고려청자의 귀족적인 형태와 무한투명한 비색(秘色)은 그 아름다움이 중국의 송자(宋瓷)를 크게 앞지르고 있으며, 조선백자의 그 어수룩하고 소박한 형태와 끝없이 청초한 흰 빛은 한 마디로 우리 민족의 자화상인 것이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추사의 ‘세한도’라든지 ‘불이선란도’, 그리고 겸재의 ‘인왕제색도(仁王齊色圖)’ 같은 그림도 인공(人工)을 초월한 선(禪)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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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탁본(1면과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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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 불상 조각의 우아한 조형미와 섬세한 운율은 그대로 신라인의 경건하고도 숭고한 의지를 눈앞에 대하는 듯 하여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이 석조물은 거창하고 요란한 중국의 운강(雲岡)이나 대동(大同) 석굴에 비하여 규모는 작으나, 구조적 웅대함과 정교한 기술보다 불상조작으로서의 단순미와 엄숙한 분위기가 역시 우리 선인들의 체질과 정서를 그대로 표출시킨 거라 하겠다.
이러한 절세의 보물들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지만 조선시대 말, 일본 침략기에 귀중한 유물들이 상당수 유실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런 일이다. 국운의 쇠퇴와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깨어지고 부서지고 도적을 맞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난맥을 이루고 있는 오늘의 상황과 미래도 생각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현대라는 격랑 속에, 제 전통이 무엇인지 족보(族譜)가 무엇인지 팽개쳐진 상태에서 철없는 후생들은 눈을 찢고 코를 높이더니 이제는 아예 노랑머리까지 흉내 내는 형국이다.
과연 어떻게 우리의 뿌리를 찾고 혼을 되살려 올바른 미래의 진로를 가닥 잡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절실한 과제다. 모름지기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명상에 들어 조상들의 거룩한 얼굴과 얼을 살피면 길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