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586) 선생은 1789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앙면 용궁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이 씨가 추사를 잉태한지 24개월 만에 출산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아버지는 순조(純祖) 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노경(金魯敬0이고 어머니는 기계(杞溪) 유(兪)씨이며 증조부는 영조(英祖) 의 옹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부마(駙馬)였다.
추사는 1819년 문과에 급제하고 1823년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었으며 현종(憲宗) 때 대사성(大司成),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자(字)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 외에도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노격(老鬲), 담연재(覃硏齋) 등 2백여 개를 수시로 바꿔 썼다.
추사는 23세 때 동지사 겸 사은부자(謝恩副使)로 청나라에가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다녀왔다. 약관의 나이에 추사는 중국 당대의 명가 홍유(鴻儒)인 운대 완원(芸臺 阮元) 옹방강(翁方綱) 등을 만나 그들의 인정을 받았다. 완원 옹방강은 그때 이미 나이가 많고 벼슬이 높은 대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서화가로서도 명성이 대단해 아무나 만나주지 않았는데 조선의 청년학자인 추사를 한번 대하고 그의 학문과 사람됨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추사가 북경을 떠나던 날 중국의 많은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선의 젊은 학자 추사를 정중하게 전송했다. 완원, 송강 이심암 선황 홍개정, 남풍 담퇴재, 번우 유삼산, 대흥 옹성원, 영산 김근원, 금주 이묵장 등이 모였는데 주학년이 즉석에서 실경 그림을 그려 ‘庚年 二月 朝鮮 秋史 金正喜 先生 將歸出素冊素畵’라고 써서 추사에게 증정했다. 이 그림은 소전이 소장하고 아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추사의 서예소질은 이미 어린 시절에 나타났다. 6세 때 입춘첩(立春貼)을 써서 대문에 걸었는데, 마침 번암 제제공(樊巖 蔡濟恭)이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문에 붙인 글씨를 누가 썼느냐고 물었다. 추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글씨임을 밝히니 “그 아이는 명필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나, 만약 능서(能書)한 즉 반드시 명도(命道)가 기구할 것이니 붓을 잡지 못하게 하라. 문장으로 나가면 대귀(大貴)를 얻으리라.”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채제공의 예언대로 추사는 명성을 날렸으나 후일 귀양살이로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하지만 이 적지(敵地) 생활이 힘이 되어 추사를 우리나라 서예 사상 최고의 명필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훌륭한 가문에 수재로 태어나 공부도 많이 했고, 젊은 나이에 중국에 가서 견문을 넓히고 당대의 대가들과 교유했으며 중국의 귀중한 문헌과 금석학(金石學) 자료 등을 들여와 연구에 열중했으니 타고난 체질을 꽃피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아닌가.
더욱이 1840년 56세의 나이로 대역부도(大逆不道) 죄인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에 연좌되어 제주도로 귀양, 10년 동안이나 적소(謫所)에 있었다. 이때도 추사는 의연한 자세였다. 10년의 귀양살이를 통해 추사는 제주도민을 가르치고 자기를 위해 정진했다. 서(書)가 무엇인지를 알고 무르익을 때 10년간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는 것은 추사의 예술을 위해서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1851년 상신 권돈인의 예론(禮論)으로 또 다시 북청(北靑)으로 장소를 옮겨 2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지만 그의 예술은 점점 더 원숙해지기만 했다.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역시, 제주 유배지에서 한결 같이 사제의 정을 나눈 문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을 위해 그려 준 게 아니었던가.
‘세한도’가 선의 경지에 도달한 고담한 세계라면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얼마나 천진무구한 경지인가.
'난초를 그리지 않은지 20년. 우연히 성품 중의 천진이 드러났네. 문을 닫고 앉아서 보고 또 보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 세계의 둘도 없는 선(禪)일레라‘
이 시제(時題)도 절창(絶唱) 중의 절창이다. 추사의 예술은 한마디로 격이 높다. 능숙을 넘어서 고졸(古拙)에 이른 경지라고나 할까. 나는 1975년 2월 1일에 충남 예산에 있는 선생의 고택(古宅)을 방문, 묘소도 참배하면서 거인의 혼령에 영원한 평안을 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