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초, 나는 장발 학장의 권유로 <국제성미술전(聖美術展)>에 한국대표로 작품을 냈다. 그 해는 성모 마리아의 성년이어서 바티칸 교황청이 전 세계적으로 행사를 벌인 것이다.
명동성당의 노기남(盧基南) 주교도 동양화로 성화를 제작, 좋을 것이라고 후원, 나는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殉敎福者)>라는 성화 3부 작품을 그렸다. 내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성화제작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명동성당과 장발 선생의 고증으로 대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가운데 150호에는 한복 입은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서 있는 모습이고, 왼쪽 1백호에는 한국의 여성 순교자 3인, 오른쪽 1백호에는 한국의 남성 순교자 3인을 각각 그렸다. 남녀 순교자들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이 작품은 완성되어 장발 씨의 양화작품과 함께 항공 편으로 로마에 보내졌다. 작품을 보내고 얼마 후에 6·25 동란이 일어나 잘 도착했는지조차 확인 할 수 없어 궁금할 따름이었다.
1975년 유럽 순방 도중 로마에 들렀을 때 나는 1950년 <국제성미술제>에 출품했던 ‘성화 3부작’의 소재를 알아보기 위해 바티칸 주재 한국대사관에 들러 사정을 이야기 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20여 년 전 일이고 바티칸 내부 사정이 복잡해서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일생의 역작이어서 못내 아쉬운 심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던 중 뜻밖에 희소식이 전해져왔다.
2001년 7월 혜화동 천주교 주교관의 최승룡 신부가 내가 찾고 기다리던 낭보를 전해준 것이다. 최 신부는 나에게 로마에 들러 우연히 이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현장을 발견하고 극력 주선해서 절두산 성당에서 계획 중인 <한국 가톨릭 순교 2백주년 기념전>에 전시하기 위해 일시 귀국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작품이 도착하던 날 최 신부는 작가인 나의 입회하에 같이 개봉하자고 요청해 혜화동 주교관으로 달려갔다. 용의주도한 포장을 풀고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잃어버렸던 애인을 재회하는 심정이었다.
작품은 잘 보관되어 손상된 곳이 없었으나 오랜 세월을 견딘 표구는 낡아서 즉시 표구사에 부탁, 일신하게 새 옷으로 단장하고 2004년 8월 15일 마침내 한강 변에 위치한 절두산 성당에서 화려한 기념전에 전시되었다. 전시가 끝난 뒤 다시 로마 바티칸으로 돌아갔지만 감격적인 나의 재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1950년에는 또 교황 바오로12세의 80세 송수(頌壽) 기념품을 그리게 되었다. 이 역시 한국 천주교회가 교황의 송수를 기념하기 위해 나에게 제작을 의뢰했던 것이다. 작품내용은 사계(四季), 화훼(花卉) 8쪽 병풍인데 그림도 성의를 다했거니와 표구도 고급 비단과 은장식을 써서 호화를 다했다.
그 병풍을 교황청에 보낸 2년쯤 후 노기남 주교가 로마에 다녀와서 나를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명동성당으로 노 주교를 방문했더니 반갑게 맞이하며 “좋은 소식이 있어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하고 말문을 열었다. 교황청에서 교황을 알현했는데 그 어른이 한국에서 온 주교냐고 묻더니 돌아가거든 병풍을 그려 준 화가에게 그림이 매우 흡족해서 침대 옆에 펴 놓고 늘 바라보고 있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 교황은 작고했고 지금 그 병풍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부산 피난에서 환도한 직후, 미도파화랑에서 성화전람회가 열렸다. 동·서양화, 조각 등 많은 작품이 나왔는데 80호 크기의 한복 입은 <성모자상(聖母子像)>을 출품했다. 그 작품은 처음에 성신고등학교가 소장했다가 지금은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