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수립 이후 미술인들은 국가차원의 미술전람 행사를 우리 스스로 열자는 여론을 일으켰고 미술인뿐만 아니라 민족적 대축제인 전람회를 만들기 위해 문교부가 앞장섰다. 산하에 예술위원회를 두어 여기서 심사위원을 뽑고 전람회 규정을 만들었다.
이때의 예술위원회 회원들은 초기 국전을 주도한 춘곡(고희동), 설초(이종우), 소전(손재형), 심산(노수현), 우석(장발), 오하 이병규(梧下 李炳奎) 씨 등이다. 예술위원회는 일제 때 적극적으로 활약한 작가를 배제하였는데, 이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화가가 이당(김은호), 청전(이상범)이었다. 이당과 청전은 <선전>시대 ‘참여’라는 이름으로 심사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위원회는 이당이 3·1운동 때 독립신문을 뿌리다가 붙잡혀 1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했던 사실과 청전이 36년 ‘손기정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직장 동아일보까지 물러난 경력을 감안하여 심사위원으로 천거하지 않았지만 추천작가로 선정하였다.
서양화부에서는 과거 이런저런 일로 소외당하던 심형구(沈亨求), 김인승(金仁承)을 국전작가로 선정했다. 조각부에서는 ‘대화숙(大和塾)사건’으로 조선미술본부에 의해 제명처분을 받았던 윤효중(尹孝重)도 추천작가가 되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는 1949년 9월 22일 문교부 고시 제1호로 고고(呱呱)의 성(聲)을 올렸다. 제1회 <국전>은 1949년 11월 21일부터 12월 11일까지 20일 동안 경복미술관(지금은 民俗館)에서 열렸다. 이때는 일반 공개에 앞서 11월 20일 하오 두 차례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관람, 작품마다 전문가 못지않게 안목 높은 평을 해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출품작은 동양화가 71, 서양화가 절대 다수인 543, 조각 41, 공예 56, 서예 129점 등 모두 840점이었다. 이중 입선작품으로 동양화 31(특선 5), 서양화 116(특선 6), 조각 22(특선 4), 서예(특선 3), 공예 36(특선 5)점이 뽑혔다. 영예의 대통령상에 서양화 ‘폐림지(廢林地)근방’을 출품한 유경채(柳景埰 / 서울사대교수 역임) 씨가, 국무총리상은 ‘꽃장수’를 출품한 서세옥(서울대 미술대학생)이 차지했다.
1회전 때는 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서울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학생으로 1회 국전에 출품한 학생은 동양화부에 박노수, 서세옥, 장운상, 안혜택 등이고 조각부에선 백문기(L부인), 김세중(청년)이 특선에 올랐다.
1회 국전의 심사위원으로는 제1부(동양화)에 고희동, 변관식, 노수현, 이용우와 나였고, 제2부(서양화)는 이종우, 도상봉, 장발, 이인성, 이병규, 김환기가 맡아서 했다. 제3부(조각)는 무슨 사정인지 김경승 혼자 심사를 했다.
제4부(공예)는 강창원, 김종현, 김재석 씨 등이 했다. 김종현은 화가였는데, 어떻게 공예부 심사위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김종현은 <협전>에서도 동양화, 서양화에 모두 입선한 2관(冠)이었고, <선전>에서도 동·서양화를 왔다갔다 들쭉날쭉한 사람이다. 김종현은 이용우와 처남 매부지간이었는데, 이용우는 술이 취하면 김종현이 살짝 곰보인 것을 꼬집느라고 “마누라가 처남 얼굴을 닮아서 밉다”고 곧잘 농담을 하기도 했다.
제5부(서예)는 석정(石汀), 영운(김용진), 소전(손재형)이 심사했고, 원곡 김기승(原谷 金基昇)이 문교부장관상을, 학남 정환섭(鶴南 鄭桓燮)과 동강 조수호(東江 趙守浩)가 특선에 올랐다. 이에 일중(김충현)은 추천작가로 <고시조(古時調)>, <예서 학사요론(隸書 學書要論)> 두 작품을 냈고, 여초 김응현(如初 金應鉉)도 출품해서 형제가 함께 활약했다. 도예가 지순택(池順澤)도 그때 <화각문고(華角文庫)>를 출품, 입선했다.
심사는 위원장인 고희동이 주도했는데, 고희동은 전체 심사위원장일 뿐만 아니라 동양화부 분과위원장까지 겸했다. 그는 동·서양화를 두루 잘 아는 분이지만 작품심사 과정에서 의견이 대립되는 경우 흔히 최연소자인 내게 의견을 묻곤 했다.
동양화부 심사에서 춘곡과 심산(노수현)은 의견이 잘 맞고, 춘곡과 소정(변관식)은 매사가 대립이었다. 의견 대립이 생기면 이용우는 비교적 중립을 지켰고, 춘곡은 불치하문(不恥下問)으로 나에게 동조를 구해서 풀어나갔다.
1회 <국전> 때 나는 심사위원으로서 한 노인이 해금(奚琴)을 켜고 있고, 다른 한 노인은 해금소리를 듣고 있는 <회고(懷古)>란 작품을 냈다. 이당 선생도 할머니 앞에서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그린 <초보(初步)>를 출품했다. 청전(이상범)은 <효천보희(曉天報喜)>란 작품을 내놓았는데, 추천작가로 지명 받은 의제(허백련), 심향(박승무), 탄원(김정원)은 작품을 내지 않았다.
서양화부의 심형구 씨는 <화실(畫室)>을, 김인승 씨는 <조모상(祖母傷)>을 그려냈다. 김홍수 씨는 <악(惡)>과 ‘나부군상(裸婦群像)을 출품해서 <악>은 특선, <나부군상>은 입선되었으나 <국전> 주무관청인 문교부에 의해 철거명령을 받았다. 한 사람의 나체도 아닌 여러 사람의 나체를 그렸다는 이유로 전시금지를 당한 것이다.
그때 신문들은 ’도덕이냐, 예술이냐‘라는 제목을 붙여 이 문제를 크게 다루었다. 당시 문교부장관이었던 안호상(安浩相) 씨는 “예술작품이라고 해서 사회 규범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나부군상‘의 작가인 김홍수 씨는 “한 여성의 나체를 여러 각도로 그려서 조화있게 배치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1회 국전이 열리고 있을 때 근원(김용준)은 신문에 평을 썼다. 동양화만 다루었는데, 근원의 평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고희동 씨의 <비행기 상에서 본 알래스카>는 씨의 종래의 수묵담채 산수와는 달리 호분을 섞어가며 수채양식으로 그린 조감도인데 노경에 새로운 시도이기는 하나 신기한 일면이 보이는 동시에 앞으로 어떠한 계획을 하고 있는지 이 일점만으로는 씨의 의도하는 바를 알기 어렵다.
신기한 취재에 배렴 씨의 <서운>이 있으나 운용의 연구과정이 부족하여 부당한 모험을 한 듯한 인상을 준다.
노수현 씨의 산수는 창윤한 먹색과 밝은 공간의 처리가 좋고 씨의 독특한 화폭의 넓은 점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실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항상 씨에게서 위험을 느끼는 점은 너무 기상천외한 별천지를 그리려는데 씨의 장점을 발견하려다가 도리어 단점같이 보이는 수가 많은 것이다.
소품에서 항상 소박한 산수를 보여주던 변관식 씨의 이번 작품은 근래에 보기 드문 실수이며, 김은호 씨의 <초보 初步>도 별 진전이 보이지 않고, 이상범 씨의 새벽녘을 그린 <효천보희 曉天報喜> 백면이 여구하여 그저 무난하다. 오래간만에 최우석 씨의 선현들을 취재한 병풍은 역시 달필 정도에 그치고 만 듯하며, 이용우 씨의 <충혼 忠魂>은 완전히 실패작이다.
장우성 씨의 <회고>는 이번 전시회의 큰 수확이었다. 씨의 동양화적 교양과 일본화에서 배운 사실의 정신이 합쳐져 우리가 늘 꿈꾸고 있는 조선화의 길을 가장 정당하게 개척하였다. 씨는 종래의 일본화적 인상을 주기 쉬운 호분의 남용도 없고 일본화 선조의 무기력하고 억양을 잃은 선조도 없고 의문의 처리, 체구의 운염, 결구의 허실, 부채의 담아 그리고 낙점운획이 모두 그 자리를 얻었다.
장 씨의 화풍은 벌써 그 훈도를 받고 있는 서세옥(특선), 박노수의 몇몇 신진 등에게도 영향을 던지고 있거니와 앞으로 우리나라 모필화는 반드시 이러한 길로 걸어가게 될 것이요, 이러한 길이야말로 고루한 냄새도 없어지고 일본색도 축출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신진 특선에 서세옥의 <꽃장수>는 인물의 배치는 실패요, 달리아꽃의 표현은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