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서울대 총장이던 미국의 해리 B. 앤스테드 박사는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예술대학교에도 가끔 들러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눈 여겨 보았다.
1947년 10월 25일 앤스테드 총장이 이임을 할 떼, 미술학부 학생들은 이별의 정과 미술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에 보답하는 뜻으로 정성어린 선물을 준비했다. 1회 입학생이던 서양학과 유영필(柳榮苾) 군이 앤스테드 총장의 초상화를 제작하고 조각가 백문기(白文基) 군이 그의 흉상을 조각해 선물했다.
앤스테드 총장도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는 뜻으로 미국유학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1차로 백문기 군과 유영필 군을 지명, 훗날을 기약했는데 이들의 유학은 6·25 때문이었는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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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 서울대 총장인 미국의 해리 B. 앤스테드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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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부터는 매년 한 번씩 정기적으로 교내전을 열었다. 학생들에게 습작을 많이 하도록 하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교내전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교내전이라 해도 남 앞에 내놓은 작품이어서 교수들이 신경을 썼다. 학생들이 출품한 작품을 1차적으로 심사해서 총장상, 학장상 등을 시상했다. 1회전 때는 조각가 백문기 군이 총장상을 받았다. 한복 입은 여인이 동그란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상인데 <명일(明日)> 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동양화과에서는 서세옥, 박노수, 장운상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제 1회전은 동화백화점(현 신세계) 화랑에서 열렸다.
지금 서울대학교의 상징 마크인 한글로 된 교표(校標)와 책 위에 횃불과 펜이 그려져 있고 가장자리에 월계수가 있는 배지도 서울대학 교수들이 도안한 것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 사각모 대신 베레모를 교포로 삼자는 미술대학 교수들의 아이디어도 채택되었다.
6·25동란 당시 일어난 50년 5월, 내 생애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제1회 교내전을 열었던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30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수십년 전 일인데도 지금까지 눈에 선한 것은 30호짜리 <포도>그림이다. 전시회 테이프를 끊자마자 모 인사가 들어와 <포도>에 빨간딱지를 붙여놓았다. 그런데 당시 서울대미대학장이던 장발 씨가 전시실을 둘러보고는 <포도>를 지적하면서 이 작품은 대학에서 사겠다고 했다. 그 작품은 이미 팔렸다고 했지만 장발 씨는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 사람을 넣어 먼저 <포도>를 예약한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지만 그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난감했다. 중간에 선 사람이 서울대 쪽이 공익성이 있으니 그 작품을 거기 주고 대신 다른 좋은 작품을 그려 받자고 설득, 결국 <포도>는 서울대로 돌아왔다.
1회 개인전을 보고 김환기는 신문에 다음과 같은 평을 썼다.
보송보송한 흰 종이의 민감과 그 휘청거리는 양호모필(羊毫毛筆)의 생리를 月田처럼 잘 다루는 화가는 드물 것이다. 숨어서 습작을 얼마나 했기에 여기에 이르렀는지 재주만 가지고는 곧잘 되는 일이 아닐 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