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이긴 했지만 전쟁이 소강상태여서 미술인들은 피난지 부산, 대구 등지에서 몇 차레 전시회를 가졌다. 1951년에는 공보처 주최로 부산 국제구락부에서 <전시미술전(戰時美術展)>을 열고 52년 3월에는 공보처와 대한미협(大韓美協) 공동주최로 ‘3.1절기념전’을 가졌다.
51년 3월 대구 공보원에서 <소품전>을, 6월 25일에는 6.25를 상기하는 대규모 기록화전도 열었다. <미협전>은 기록화전과는 달리 순수한 회원작품만으로 3.1절, 광복절 등을 경축하는 행사를 가진 것이다.
대구공보원에서 연 <소품전>에는 일선 스케치와 장성들의 초상화가 꽤 많이 나왔는데 종군화가단의 단장이었던 서양화가 박득순(朴得淳)씨는 김종오(金鍾五) 장군의 초상화를 그려냈다.
부산 국제구락부에서 열었던 마지막 기록화전에 출품했던 서양화가 이수억(李壽億) 씨와 대작 <피의 능선>은 미술대장 정경모(鄭京模) 중위와 이선근(李瑄根) 정훈국장의 주선으로 대한중석(大韓重石)이 고가로 매입하여 화제가 되었다.
내가 <대한미협전>에 썼던 고목에 달이 걸려있는 20호짜리 <한월(寒月)>은 미군 소위 매미 씨가 샀다. 부산역전의 동그란 퀀시트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벽면이 고르지 않아 작품을 덜렁덜렁 매달아 놓다시피 진열했는데, 이 전시장에 들른 매미 소위는 부인이 화가인데 부인에게 이 작품을 꼭 선물하고 싶다고 해서 화료는 적지만 간청에 못 이겨 220달러에 내주었다. 곱상하게 생긴 매미 소위는 애처가인 것 같아 정이 가기도 했고, 내 그림 반월을 유심히 좋아해서 고맙기도 했다.
대구 동본원사(東本願寺)에서 열린 대규모의 6.25기념전은 정일권(鄭一權) 육군참모총장이 테이프를 끊었는데 전람회에는 전쟁기록화뿐 아니라 정훈국의 종군사진과 전리품 전시도 겸해서 성대하게 열려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끌었다.
화가들의 종군활동 중 조각가 김명희(金明熙)씨가 순직한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섭섭한 일이다. 52년 4월 김명희 씨는 5사단을 따라 간성(干城)까지 종군했는데, 마침 석고재료를 사기 위해 속초로 나오다가 지프가 전복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종군문화인으로는 첫 번째 희생자였기 때문에 국방부에서 장례를 치러 주었다.
또 내가 부산에 있을 때 체신부에서 스위스 국제체신기념관에 걸 작품을 의뢰해 와서 나는 흰 저고리에 녹색치마를 받쳐 입은 젊은 여성을 그리고 앞에 큼직한 고려청자 항아리를 배치한 1백호 크기의 그림을 그렸다. 화폐개혁 전이어서 화료를 보따리로 싸서 주었고 액수가 몇 십만 원인지, 몇 백만 원인지 기억은 확실치 않지만 당시로는 꽤 많은 돈이어서 피난 중에 요긴한 생활비가 되었다.
피난시절 3년 동안 화단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화단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화가들도 현대화의 길을 모색해 추상경험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획기적인 일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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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송도 셋방의 서울미대 / 좌로부터 박갑성, 필자, 장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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