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 후 미술계는 사분오열 혼란 상태에 빠졌다. 6.25의 소용돌이 속에서 화가들의 수난이 컸기 때문이다.
이쾌대가 위원장, 이봉상이 사무장이었던 미술문화협회는 이쾌대의 월북으로 자동 해산하였는데, 미술문화협회의 일원이었던 김환기가 독일유학을 하고 돌아온 배운성, 조각가 윤효중, 당시 동양화단의 중진인 이상범, 이응노 등과 손잡고 ‘50년 미술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그룹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9.28 수복 후에 이미 한 차례 부역자 참사라는 태풍이 지나간 후여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도 서먹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부역자 심사 때 심사위원을 했던 고희동, 장발, 이종우, 이순석은 미술가들의 단합을 호소했지만 화가들이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했고, 조사를 맡았던 이세득 씨나 조사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은 자연히 소원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이른바 도강파(渡江派)와 잔류파(殘留派) 사이에도 무언가 찜찜함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 중에서도 이렇다 할 주견도 없으면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부화뇌동하면서 덤벙대던 화가들이 더욱 문제였다. 적치(敵治)의 수복이라는 격동의 틈바구니에서 기회주의자들은 눈치를 살피느라 환도 후에도 서울에 올라오지 못했고, 올라왔다 하더라도 떳떳치 못한 과거 때문에 은신해 있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6.25동란으로 3년이나 걸렀던 제2회 <국전(國展 1953년 11월)>이 다시 추진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미술계는 단합을 전제로 ‘과거를 묻지 않고’ 실력 있는 화가를 심사위원으로 선출했다.
서양화부 심사위원으로 부역심사 대상이었던 모모 화가를 선정하여 6.25 때문에 빚은 민족적 비극을 불식하는데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박수근(朴壽根)같이 북에서 내려온 화가들의 <국전> 참여로 뜻 깊은 민족예술의 축제가 되었는데, 박수근은 ‘집’과 ‘노상(路上)에서’ 등 두 작품을 출품하여서 ‘집’이 특선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동란을 겪은 후여서 그림 소재들이 전쟁을 다룬 소재도 많았지만 추상경향의 작품이 등장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양화가 김흥수의 ‘침략자’와 변영원(邊永園)의 ‘선(線) ㆍ 광(光) - 빌딩을 구성하는 주제’는 <국전>에 선보인 최초의 추상작품이다.
2회 <국전>때는 동양화부에서도 1회부터 심사위원을 맡은 고희동, 변관식, 노수현, 나 말고 1회 때 <선전> 참여 운운으로 심사위원에서 제외되었던 이상범이 심사위원에 뽑히고 배렴이 처음으로 심사위원이 되었다. 서양화부는 이종우, 이마동, 장발, 김인승, 도상봉, 김환기가 심사위원을 맡았다. 조각부는 1회 때 김경승 혼자 심사를 맡았는데 2회 때는 김종영, 윤효중이 심사했다. 윤 씨는 친일ㆍ부역 운운으로 고전했지만, 부산 피난 때 고희동이 이끄는 대한미협에 적극 협력, 고희동의 눈에 들어 복권한 경우다. 공예부는 김진갑(金鎭甲), 장선희(張善禧), 이순석이 심사위원을 맡고, 서예부는 1회에 이어 김용진, 손재형 두 사람이 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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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회 국전개막을 알리는 기사 (경향신문 1953. 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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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국전>에서는 추천작가로 동양화부는 허백련을, 서양화부는 박영선(朴泳善), 조병덕(趙炳悳), 이병규(李昞圭), 박득순(朴得淳)을, 공예부는 김재석(金在奭)을, 서예부는 배길기와 김충현을 뽑았다.
이때 영예의 대통령상은 <만추(晩秋)>를 그린 서양화가 이준(李俊)이 차지했다. 이 씨는 당시 34세의 청년작가로 숙명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만추>는 비원 낙선제 건너편의 희우루(喜雨樓)에서 본 고공의 가을을 그린 것이었다. 차석인 국무총리상은 박노수에게 돌아갔다. 박노수가 그린 <청상부(淸想賦)>는 까만 치마저고리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여인상이었다. 박노수는 이때 서울대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이었다.
문교부장관상은 허정두(許正斗)의 <귀가(歸家)동양화>, 이세득의 <군상(群像)서양화>, 김기승의 <해서칠언대련(楷書七言對聯)>(서예) 등이 차지했다. 동양화부에서 문교부장관상을 받은 허정두는 허백련의 제자로 제기있는 신인이었으나 트럭 전복사고로 비명에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