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선전)」註*에 <해빈소견(海濱所見)>으로 초입선을 따내 주변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상서회에 입회하기 직전에 시험 삼아 써낸 글씨도 제12회(1933년) 「서화협회전(書畫協會展, 협전)」에 입선되었다. 지금도 「국전」 입선이 어렵지만 당시 「선전」입선은 매우 어려웠다. 처음 출품한 작품이 입선이 되자 신문에 크게 기사가 실려 굉장한 일인 것처럼 알려졌다.
「선전」과 「협전」에서 서(書)와 화(畵)가 나란히 실력을 인정받게 되자 고향에 이 소식이 전해져 아버님의 격려편지까지 받았다. 아버님은 “이제 공부의 길이 열린 것 같으니 자만하지 말고 더욱 노력해서 이왕이면 훌륭한 서화가가 되도록 하라”고 당부하셨다.
1921년 서화협회註**는 임시총회를 열고 4월1일부터 나흘 동안 서울 계동(桂洞)에 있는 중앙고보(中央高普) 강당에서 제1회 「서화협회전」을 열었다.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서‧화‧사군자 등의 회원작품전과 공모전을 함께 열었으며, 「서화협회보」도 발행하여 우리 미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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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가 이당 문하에 들어간 지 1년만인 1942년(20세) 제 1회 선전에서 처음 입선한 해빈소견 / 부서지는 파도와 바닷가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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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화가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자 일제는 문화정치라는 미명 아래 동경의 「제국미술전람회(帝國美術展覽會)」 운영을 본떠, 1회 「협전」이 열린 다음해(1922년)에 총독부 주최의 「선전」을 서둘러 개최하였다. 1년 늦은 후발주자 「선전」도 「협전」에 뒤질세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려 경쟁의 양상마저 보였다.
내가 「협전」에 낸 작품은 화선지 반절 크기에 행서로 쓴 글씨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있는 「이원귀반곡서(李原歸盤谷序)」 전문(全文)이었는데 처음 출품한 이 작품도 대 선배인 「협전」 임원들의 칭찬을 받았다.
「선전」에 초입선한 작품은 파도치는 바닷가 바위 위에서 노니는 여러 마리의 갈매기를 그린 것인데 120호 정도 크기의 대작으로 비단 위에 전체를 쓴 <해빈소견(海濱所見)>이다. 나는 가까이서 갈매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작품을 구상해 놓고 실물을 보기 위해 날마다 창경원 동물원에 가서 스케치에 열중했다.
「선전」은 봄에 열리기 때문에 전해 가을부터 준비해야 했다. 지금은 넓은 공간이 있는 건물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그때는 사정이 그렇지 못해 전람회 준비철이 되면 너나없이 곤란을 겪었다.
註*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가 해마다 개최한 전국 규모의 미술공모전. 「선전(鮮展)」이라 약칭하기도 한다. 1922년부터 1944년까지 23회를 거듭하면서 관전 형식의 권위주의로 한국 근대미술 전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註**서화협회(書畫協會)
3.1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18년 5월 19일에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단체.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돌아온 춘곡(春谷 高羲東)이 주동,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우향 정대유(又香 鄭大有), 위사 강필주(渭士 姜弼周), 청운 강진희(靑雲 姜璡熙), 소호 김응원(小湖 金應元), 관재 이도영(貫齋 李道榮), 해강 김규진(金圭鎭), 수산 정학수(壽山 丁學壽),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백당 현채(白堂 玄采) 등이 발기인이 되어 만든 순수한 미술단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