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가서 6개월 되던 1964년 1월에 국무성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이 역시 우리 대사관의 이 참사관과 나의 미국인 제자 오환회원들과 몇몇 한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졌다. 초대장과 카탈로그 제작에서부터 작품 운반, 진열, 내빈접대 등 나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전시준비를 시작하면서 초청장을 만드는데 첫째, 누가 초청인이 되느냐가 문제였다. 나 자신의 이름으로 초청장을 만든다면 미국인들이 알아줄 리가 없을 것 같아 궁리 끝에 대사(大使) 명의를 빌면 무난할 것 같았다. 내가 대단한 존재는 아니더라도 국가대표인 대사가 자국의 유명한 화가라고 소개하면서 그 이름으로 초청한다면 받는 사람들이 한결 신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김정렬(金貞烈) 대사를 찾아가 사유를 설명하고 차명을 부탁했더니 한마디로 사절했다. 이유인즉 미국무성 측에서도 고위 인사가 나올텐데 그렇게 되면 자기가 연설을 할 수밖에 없으니 자기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어서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알다시피 김 대사는 군(軍) 출신이어서 외교관으로서의 경험도 적으려니와 영어도 능통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난처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일은 촉박하고 할 수 없이 나 자신의 이름으로 초청장을 만들었다.
초대일 아침, 열성스러운 제자들(오환회원)이 대거 출동해서 대형 케이크를 사오고 큰 꽃다발을 가져오고 큰 통에다 커피까지 끓여와서 테이프 절단식에 대비했다. 홀에는 내빈이 가득했는데 한국대사관 측에서는 한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인 제자들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한국대사관으로 항의전화를 걸었다. 이때 나는 부끄러워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보니 대사와 공사 등 몇 사람의 한국인이 전시장 모퉁이에 서 있었다. 시간이 되어 문화차관 등 국무성 측 사람들이 입장해서 한국 대사관 측 사람을 찾으니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형국이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중화(中和)라도 해주는 듯 마침 워싱턴에 살면서 라디오 방송 <한국의 소리>의 소리를 진행하고 있는 황재경(黃才景) 목사가 나타나 한국으로 보낼 나와의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어색한 분위기가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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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년 1월 20일부터 25일까지 미국무성 화랑에서 열린 <월전 장우성작품전> / 김정렬 대사와 미 국무성 문교차관이 악수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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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가 계속되는 6일간 오환회원들이 번갈아 당번을 서서 회장을 지켰고, 많은 관객이 참관해서 성황을 이루었는데, 그 중 워싱턴에 영주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중국인 석도생(石道生) 씨가 찾아와서 나의 그림과 글씨를 흔상(欣賞) 하면서 같은 동양인으로서 우정 넘치는 한시(漢詩)를 즉석에서 짓고 써준 것은 인상 깊은 일이었다.
이 전람회를 계기로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을 대충 소개하려 한다. 미국의 농림성에는 대학원 과정의 강좌가 있는데 그곳 책임자가 나의 전시작품을 보고 간 모양이었다. 그 강좌에 아트코스가 있는데 거기서는 서양화뿐 동양화는 원래 없었는데 동양화 코스를 신설하기 위하여 나에게 출강교섭을 해온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나는 그 대학원의 보증으로 여행자 여권을 영주권자 여권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 강좌의 서양화는 이탈리아 나사리, 쿠플리 두 사람이 함께 가르쳤다.
나의 워싱턴 생활 3년 동안에 내가 가장 힘을 기울이고 열심히 추진한 것은 동양화 학원인 <동양예술학교> 설립과 운영이다. 역시 오환회원들이 되어 만든 이 학교는 정식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 사단법인으로 출발한 것이다. 이 학교 최초의 멤버는 회장에 크네스 박사(스미소니언 인스티튜트 멤버), 부회장에 노광욱(盧光旭 의학박사) 씨, 브렐리 여사(해군대령 부인 오환회원), 사무국장에 오트 여사(오환회원 가정주부), 이사는 워싱턴의 재벌 밀턴 발로, 양기백(梁基伯 국회도서관 동양도서 책임자), 스펜서 데이비스(칼럼니스트), 박관부(朴寬富 치과의사), 박동선(朴東宣 사업가) 씨 등이었다.
동양예술학교는 포토막강 옆 맥아더 블루버드가(街)의 2층 주택을 임대해서 1965년 2월에 개교, 1년 남짓 운영했다. 이때 마침 나의 서울 미대 제자 이열모(李烈模) 군이 조지 워싱턴대 대학원에 유학 와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