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화상(畵商)이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은 1970년 현대화랑이 관훈동에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한 것이 효시라 할 수 있겠다. 일정 때 오봉빈(吳鳳彬) 씨가 광화문 네거리 당주동 입구에 조선미술관을 경영했으나, 표구사 겸업이었고, 화신(和信), 삼월(三越) 등 백화점에 화랑이 있었으나 모두 임대용이었으며, 해방 후 58년에 아시아재단 후원으로 반도호텔 1층에 문을 연 반도화랑이 그런대로 화랑구실을 한 셈이다.
반도화랑은 그 당시 외국인이 많이 이용하던 반도호텔 안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 외국인 상대로 거래가 이루어졌는데, 박수근의 토속적인 화풍이 외국인에게 인기가 있어 일약 유명작가가 됐다고 한다.
이대원(李大源) 씨가 주인이던 반도화랑에는 박명자, 한용구 두 사람이 일하고 있다가 1970년대 초에 분가해서 관훈동으로 옮겨와 현대화랑을 열었고, 다시 한 씨가 이탈, 박 씨의 단독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럴즈음 많은 화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그 중 주요한 몇 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면 선(選)화랑, 진(珍)화랑, 노(盧)화랑, 학고재(學古齋)화랑, 동산방(東山房)화랑, 가나화랑을 들 수 있다. 처음에는 인사동에 집중했으나, 차츰 사간동, 청담동, 평창동 등으로 확산되고 마침내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켜 무수한 화랑들이 경합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나라 상업화랑의 역사도 이럭저럭 30여년을 헤아리게 되었는데, 문화사업으로서 화랑의 발자취와 평가는 어느 정도인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알다시피 화상(畵商)은 작가와 애호가의 중간에서 예술품을 중개하는 업체이다. 장사이니만치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지만 장바닥의 잡화상(雜貨商)과는 달리 문화ㆍ예술품을 다루는 일이어서 화랑영업은 장사 중에도 고상한 장사로 고도의 전문적 식견(識見)이 필요하고 신의와 양심을 바탕으로 한 유통질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70년대 들어서 일반적으로 경제사정이 호전(好轉)되어 생활의 여유가 생긴 일부 계층이 문화ㆍ예술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한때 화상들이 호경기를 누리게 되어 그 중 어떤 화랑은 치부를 했다는 풍문도 나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치부하는 방식이 문제이고, 부(富)를 이뤘다고 오만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느 일부 화상은 특정 작가를 클로즈업시키기 위해 몰지각한 일부 사이비 평론가와 철없는 매스컴과 결탁해서 북 치고 장구치고 나발 부는 식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예도 있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작가는 소위 바지저고리가 되고, 고객은 봉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단순한 풍문이기를 바란다.
소위 작가의 경우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때 이른바 원로 대가라고 하는 몇 사람이 할 일은 없고 갈 데도 마땅치 않았던지 매일같이 몇몇 잘 나가는 화랑을 번갈아 찾아다니면서 차 혹은 식사대접을 받은 경우도 들어서 알고 잇는데, 이거야말로 소위 작가의 위신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참고로 일본 화단의 경우를 보면 탑 클라스 원로 대가 몇 사람은 일반인과의 대면을 극도로 제한할 뿐 아니라 신문사나 미술잡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수주일 전에 신청을 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필요 이상의 권위주의는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최고 수준의 대표급 작가라면 일정한 권위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한 가지 전시회의 경우 초기에는 작품대금 분배 시 3:7(화랑 3 작가 7)이던 것이 4:6제로 바뀌고 그 다음은 5:5로 바뀌더니 요즘은 역 3:7로 바뀌었다고 한다. 작가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유위유능(有爲有能)한 신진작가들은 아예 주눅이 들어 화랑 앞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일이다.
작품 값의 불균형도 문제다. 모 현대작가(작고) 30호 정도의 유화 한 점이 경매에서 4억원에 팔렸다고 하는데, 그림이 그만큼 귀중품 대접을 받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 예술가로 손꼽히는 단원(檀園)이나 겸재(謙齋), 추사(秋史) 작품 값을 앞지르는 그러한 비약은 확실히 이상 증후라고 아니할 수 없다. 화상이나 작가나 애호가 모두 자숙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