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0년에 예술원 회원에 당선되었고, 다음해 71년에는 예술원상도 받았다. 예술회원이 될 때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예술원상을 받을 때도 한바탕 파란을 겪었다. 그때는 예술원이 연지동 전매회관에 세 들어 있었다. 해마다 있는 예술원상 문제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서양화가 김인승(金仁承) 씨가 “이번에는 월전이 상 탈 차례야” 하고 넌지시 말을 꺼냈다.
나는 “예술회원이 된지도 얼마 안 되는데 무슨 상을...” 하고 사양했다. 옆에 잇던 도상봉 씨가 “그게 무슨 상관이야, 탈만하면 타는 게지”하고 거들었다. 이렇게 장외(場外)에서 발의된 내 예술인상 문제가 얼마 후 예술원 미술분과 회의에서 정식으로 거론되었다. 이때 예술원 회장은 박종화 씨가, 부회장은 손재형 씨가 맡고 있었다. 당시 예술원 미술분과 회원은 김은호, 허백련, 이상범, 노수현, 이종우, 장발, 도상봉, 손재형, 김인승, 배길기, 장우성, 이병규 등이었다.
분과별로 회의를 열어 미술분과에서도 후보를 냈다. 나 외에 또 다른 한 사람을 예술원상 후보로 제시하고 무기명 비밀투표에 붙였는데, 1차 투표에서 내가 7표, 박득순 씨가 3표 나왔다. 예술원상은 회원 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받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3분의 2선에 걸린 것이다.
2차 투표에서도 찬성 7표, 반대 3표로 벽에 부딪혔다. 2차 투표 결과가 1차 투표 때와 똑같이 나온걸 보고 어느 회원이 “미술분과에서 하는 일인데, 누구 하나 양보하면 될게 아니냐”고 못마땅해 하는 발언을 했지만 3차 투표에서도 역시 찬성 7표, 반대 3표로 일관했다.
문학, 음악 등 다른 분과는 모두 수상자가 결정되었는데, 미술문과만이 확정을 못 짓고 있었다. 예술인상은 총회의 인증을 거쳐야 확정이 되는 것이다. 총회를 열어 분과별로 경과보고를 듣는데 문학분과는 백철(白鐵) 씨가 몇 표 받아서 후보자로 결정되었다고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미술분과는 시암(배길기)이 분과회장이서 앞에 나가 “표가 모자라서 후보 선정을 못했다”고 간단하게 보고했다. 그랬더니 문학분과에서 구체적인 보고를 요구하면서 “미술분과는 어느 분과보다 후보자가 많을텐데 후보자 선정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하는 수 없이 시암이 다시 일어서서 “월전이 몇 표, 아무개가 몇 표 받았는데, 한 표가 모자라 안됐다”고 말했다. 총회장에서는 “너무 인색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터져 나왔다. 어떤 회원은 “상금을 안주면 국고에 반납되는데, 두 사람 다 상을 받고도 남을 사람들이 아니냐”고 동정론을 펴기도 했고, 모윤숙 씨는 “이건 감정이로군. 이럴 수가 없어” 하고 미술분과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회장인 월탄(박종화)은 아무 말 않고 자리에 앉아 있고, 부회장인 소전이 벌떡 일어나 “시암! 이거 왜 이래. 다른 분과에서 트집 잡아도 미술분과에선 주자고 나서야 할텐데 거꾸로 됐군”하고 다시 의논해보라고 종용했다. 그래서 결국 5분간 정회를 선언하고 미술분과만 밖으로 나가 재차 의논하는데, 나는 내 일이어서 겸연쩍어 그냥 앉아 있었다.
얼마 후 시암이 총회장에 들어와 “미술분과에서 원만히 타협, 월전을 예술인상 후보로 결졍했다”고 발표, 총회에서 확정했다. 나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71년 7월 17일 16회 예술원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때 나와 함께 예술원상을 받게 된 사람은 문학에 백철(白鐵 중앙대 교수), 음악에 이주환(李珠煥 국악인), 연예에 윤봉춘(尹逢春 영화감독) 등 네 명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미술분과회장을 맡았던 시암이 내 화실로 찾아와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해서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자”며 종로 뒷골목에 있는 맥주홀 <낭만(浪漫)>에 가서 서먹한 감정을 풀었다.
내가 처음으로 예술원 회원이 될 때도 약간의 방해가 있어 좀 개운치가 않았다. 그래도 회원에 당선된 후 소전이 앞장서서 이당 댁에 찾아가 오랫동안의 불편한 감정을 풀었다. 이때 이당 선생은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데 73년 충무공 영정 통일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당 선생은 다시 각 주간지에 일방적인 비방기사를 내고 ‘백인 연판장’을 만들어 뿌리는 바람에 또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