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원은 연례행사로 해마다 외국의 석학을 초빙하여 심포지엄을 갖는다. 학자, 예술가를 초청할 때는 1등 왕복 비행기표는 물론, 호텔도 최고급으로 잡아줘 체제기간동안 준국빈 대접을 한다. 주제발표가 끝나면 외국 손님들에게는 경주 등 명소관광도 시켜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예술원에 와서 주제발표를 한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일본, 서독, 이집트, 자유중국 등이다.
나도 73년 제2회 ‘아시아예술심포지엄’에서 한국대표로 주제발표를 했다. 이때의 주제발표가 중국의 김광중(金光中. 중국시의 전통과 현대성), 이집트의 무스타파뮤니르(이집트의 미술), 서독의 지그프리트 보리스(20세기 서양음악에 있어서의 소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 필리핀의 무크레샤 R, 카실라그(필리핀의 음악적 상황), 인도네시아의 소에다르소노(인도네시아의 살아 있는 연예전통), 한국의 장우상(예술에 있어서의 전통과 현대), 황수영(黃壽永. 우리 고대 미술과 불교), 이헌구(李軒求. 한국문학의 체질적 구조), 이혜구(李惠求. 한국음악의 현대서), 서항석(徐恒錫. 연극에 있어서의 전통과 현대) 씨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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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년 9월 25일 아시아 예술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하는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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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제발표를 통해 우리 전통미술의 성격을 고찰했다. 우리 문화가 애초부터 중국 대륙문화권에 속하면서 우리 나름의 특성을 키워왔다고 전제, 중국미술의 성격부터 알아봤다.
중국의 미술은 한마디로 정신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그것이 현실주의적이고 합리적인데 비해 동양의 그것은 사유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동양의 종교인 불교나 도교(道敎), 그리고 유고의 정신이 그러하고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철학이 바로 이러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상을 배경으로 한 문화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동양의 미는 선(禪)이라든지 허(虛)ㆍ소(素)ㆍ졸(拙)ㆍ박(撲)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말로 형용할 수 있는 고답적인 경지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노경(老境)의 세계라고 하는데, 이는 인본주의와 실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서구의 문화와는 완전히 성격을 달리하는 유심주의(唯心主義)적 경지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은 오늘 이 자리에서 동양미술의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동ㆍ서의 문화는 어디까지나 이원적인 것이고, 각각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어느 한편에서 상대편과 우열의 차를 두며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한국 미술의 특성을 ‘단아(端雅)’, ‘소박(素朴)’, 청초(淸楚)‘로 규정하고 석굴암의 불상만큼 조형미를 잘 나타낸 것도 드물고, 조선의 자기만큼 한국인의 성정(性情)을 잘 나타낸 것도 없으며, 단원 김홍도의 그림만큼 한국인의 정취를 잘 나타낸 그림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전통과 현대의 개념을 설명하고, 예술에 있어서 전통성과 현대성의 장단점을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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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회 아시아 예술심포지엄 / 1980년 부산 해운대 극동호텔 (좌로부터) 김경승, 서항석, 이상춘,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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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은 국제적인 심포지엄뿐만 아니라 해마다 봄ㆍ가을에 세미나를 연다. 발표자를 통해 전공분야나 일반교양에 이르기까지의 예술전반에 대한 것을 발표하고 질의도 받는다. 대체로 1년에 한번 조용한 명소를 찾아 서울을 떠나서 세미나를 여는 게 상례다. 벽제(碧蹄) 세미나 때는 김종영(金鍾瑛)이 ‘로뎅의 조각’을 발표했고, 팔당 세미나 때는 윤석중(尹石重)이 ‘아동문학’에 대해 얘기했다.
밖에 나가면 공기도 맑고 심기(心氣)가 일전돼 대부분의 회원들이 유쾌하게 하루를 보낸다. 현지에 가서 찌개나 지방 특산물을 곁들여 술이라도 한잔씩 하면 세미나장은 고담준론(高談峻論)에서 사랑방 분위기로 바뀐다.
예술원은 1년에 한번씩 <예술원보(藝術院報)>와 <에술지>를 출간하고 <에술원전(藝術院展)>도 연다. 1회 때는 문학분과에서 각자의 저서, 음악분과에서 작곡ㆍ박품집, 연예분과에서 작품집, 미술분과에서 그림을 내놓아 합동으로 했지만, 지금은 미술분과만으로 <에술원 미술전>을 연다.
2002년 예술원의 미술분과 회원은 나와 이대원, 천경자, 권옥연, 박노수, 권영우, 이준, 오승우, 백문기, 전뢰진, 윤영자, 민경갑, 이신자, 권순형, 손동진, 김충현, 이광로, 최종태 씨 등이었다. 2003년 현재는 재적회원이 많이 바뀌었고, 그동안 작고회원과 신입회원으로 많은 교체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