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 학장은 내가 학장운동 했다는 오해가 풀리자 미안한 눈치였다. 학생과장 자리마저 떼어버렸던 그가 다시 나를 그 자리에 앉혔다. 나는 태풍 일과 후인 1960년 봄에 우성 김종영(又誠 金鍾瑛)과 함께 소공동 입구 중앙공보관에서 <장우성(동양화)ㆍ김종영(조각)> 2인전을 열었다.
벽에는 그림을 걸고, 가운데 공간에는 조각을 진열했는데, 조각과 동양화가 의외로 조화를 이루었다. 우리의 2인전을 보고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 교무과장으로 있던 박갑성 씨는 <새로운 지평선 마련>이란 타이틀로 신문에 전시평을 썼다. 참고삼아 박 교수의 전시평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동양화ㆍ조각 2인전이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개최되어 근래에 보기 드문 대성황을 이루었다. 동양화와 조각이 한 자리에 전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이채를 띠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 두 예술 분야가 서로 연관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두 예술가가 현재까지 10여년이나 미술대학의 교수 생활을 통하여 맺어진 아름다운 우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보다도 양 교수는 각자의 분야에 있어서 어느 모로 보나 중진이며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더욱 이채로웠으며 그 의의가 자못 컸던 것이다.
과연 두 분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혹은 그 이상으로 오랫동안 탐구하고 연마한 역량을 훌륭히 보여주었으며 모든 혼란과 잡념을 물리치고 현대미술이 걸어야 할 방향을 뚜렷이 제시하는 동시에 미술인이라면 누구나 넘어야 할 새로운 지평선을 마련했다는 것은 보는 사람 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예술계의 기쁨이며 크나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두 분의 앞날에 영광과 축복이 더욱 풍부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그리고 끝에 한록(閑鹿)이란 박 교수의 필명을 적어놓았다. 이 신문에는 나의 작품 <수선(水仙)>과 우성의 조각 <꿈>을 크게 싣고, 두 사람의 인물 사진도 나란히 실었다.
|
|
| ▲ 장우성ㆍ김종영 2인전/ 1960년 중앙공보관 |
|
박 교수의 말처럼 동양화와 조각을 함께 전시하기는 나와 우성의 2인전이 역사상 처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사실 나와 우성, 그리고 평을 쓴 박갑성 씨는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남달리 가까이 지냈었다. 학교가 파하면 명동으로 나가 대표를 나누고 헤어지기 일쑤였다.
박 교수도 나처럼 술을 좋아해서 늘 우성과 셋이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장발 학장도 가끔 우리들의 자리에 끼곤 했는데, 장 학장은 가끔 연회라도 끝나면 으레 2차를 가는 습관이 있었다. 몸 매무새도 깔끔할 뿐 아니라 매사가 치밀해서 대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았으나, 술 자리에서 만은 그렇게 호방할 수가 없었다.
장 학장과 우리가 가끔 가던 술집은 종로 신신(新新)백화점 뒤편에 있던 <신신바>였다. 거기에 가면 고 최두선(崔斗善) 씨도 흔히 만났다.
내가 미국에 가 있을 때도 장발 씨를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는데, 장발 씨의 형님 운석 장면(張勉) 박사의 추도식이 있는 워싱턴의 어느 성당에서 거행되어 피츠버그에 살고 있는 장발 씨가 그 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나를 만나니 더 없이 반가운 듯 내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며 훗날을 기약하며 작별했다.
80년도인가 장발 씨가 서울에 잠깐 왔을 때도 내가 가까운 몇 사람을 요정 <장원>에 초대해 하루저녁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그 자리에는 김종영, 박세원, 김세중이 참석했다. 다 아는 일이지만 장발 씨 3형제는 모두 외국유학을 한 엘리트 들이다. 누구나 다 아는 장면, 장발 씨 외에 막내 장극(張剋) 씨도 세계적인 항공학 권위자다. 장극 씨는 워싱턴에 살고 있으면서 유렵, 소련 등 항공학계의 초청으로 왕래가 잦았다. 내가 워싱턴에 머물 때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내가 귀국한 뒤 과학기술원 초청으로 그가 서울에 왔을 때는 나름대로 고마움을 잊지 못해 내가 몇 차례 식사 초대를 하기도 했다.
장 씨 3형제의 선친이 장기빈(張箕彬) 씨인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인천에서 사업에 성공, 우리나라에서 외국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사람 중의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