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에 있는 동안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을 두 번 목도했다. 그 당시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에 대한 국민적 존경과 애도가 그것이다. 젊은 대통령 케네디는 평소부터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냉전 관계에 있는 소련의 첨단무기를 실은 군함이 쿠바를 지원하기 위해 하마나를 향해 항해하고 있을 때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다 알다시피 쿠바는 미국의 최대 암적 존재로서 미국의 턱밑에 위치하고 있어서 쿠바가 만일 신무기를 손에 넣는다면 미국은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 전체가 긴장하여 그 귀추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때 케네디 대통령은 긴급 명령을 해군에 하달했다. 소련 함정이 일정한 선에 오거든 격침하라는 단호한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사실이 신문, 라디오를 통해 발표되던 날 나는 어느 미국인 친구와 자동차를 타고 워싱턴시내에 가고 있었는데, 이 뉴스를 듣고 그 친구가 긴장하면서 미·소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내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그 이유를 물었다. 내 생각으로는 공산주의자는 승산 없는 모험은 하지 않으니 두고 보라고 했다.
이때 소련 함정은 시시각각으로 쿠바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나는 정치도 군사도 모르고 예언 능력도 없다. 다만 그 친구의 과잉공포를 달래기 위한 수사(修辭)일 뿐이었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의 단호한 격침명령이 떨어지자 소련 함정은 공해상에서 뱃머리를 돌렸다. 이때 미국 대다수의 국민은 대통령의 과감한 조치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절대 신뢰하여 케네디는 영웅이 되었다.
그 후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총격을 받고 운명하던 날 나는 워싱턴 가톨릭대학 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고 있었다. 저녁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자동차가 있는 운동장에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마다 모여 서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차의 라디오를 켜니 대통령의 유고 소식이 계속 보도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처참한 현장 상황과 더불어 대통령의 무사를 기원하는 시민들의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고 거리마다 시민들이 모여 대통령의 회복을 비는 가투집회를 열고 있다고 반복 보도 했다.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데 대로변 인도에 흑인 여자들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는 모습도 보였다.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분방한 미국의 시민의식이 어떤 사태를 만났을 때 이처럼 열화같은 ‘정(情)’과 의(義)‘의 불길로 타오르는 것은 미국인들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놀라웠다.
케네디 대통령이 별세한 뒤 오환회원들과 만났더니 자기들은 케네디를 장차 링컨과 같은 대통령이 될 것으로 믿고 기대했었는데 불행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