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우리 일행은 기차 편으로 상해(上海)에 도착했다. 상해는 북경이나 서안 등 다른 도시와는 달리 우리에게는 감개 깊은 고장이다. 홍교(虹橋)영빈관에서 여장을 푼 우리는 우선 일반 관광에 앞서 마당로(馬當路) 302-304번지, 옛 우리 임시정부(臨時政府)가 들어있던 현장을 찾아갔다. 좁디 좁은 빈민가 뒷골목에 자리한 초라한 옛 건물. 이것이 우리 선열들의 망명정부(亡命政府)가 들어 있던 곳이다. 아무 표적도 없이 길가 노점상 노파에게 물어보고서야 겨우 찾았다.
그 집 앞에 서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았다. 일제 36년 동안 남의 나라에 와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하던 피어린 현장! 김구(金九), 이승만(李承晩), 이시영(李始榮), 신익희(申翼熙), 조소앙(趙素昻) 선생 등 여러 선열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라 발길이 돌아서지지 않았다.
윤봉길(尹奉吉)의사의 의거(義擧) 현장인 홍구공원에는 아무 행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윤 의사가 폭탄을 날리고 일본인들의 축제가 풍비박산 된 그 현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게 고요하기만 했고, 그곳에는 노신(魯迅)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편전쟁 이후 열강의 조계(租界)가 들어서며 갈갈히 찢어진 상해.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상해는 피곤하고 가난해 보였다. 지난날 화려한 국제도시로 이름을 떨쳤던 상해! 사회주의 중국은 어떻게 이 상해를 되살릴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광대한 국토, 11억을 넘는 인구!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이 나라는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불끈 주먹을 쥐고 일어선 것 같은 증후가 감지되는 듯하다. 젊은 사람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보이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활기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상해박물관에 들어서서는 아예 질려버렸다. 충충한 옛 건물에 가득 들어선 엄청난 양의 수장품. 몇 천 년의 연륜은 자랑하는 청동기유물들. 과연 거대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압축된 현장을 보며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의 방문을 안 박물관장 마(馬)박사와 정의충(丁義忠) 주임이 나와서 친절하게 응대해주는데 관장이 일본어가 유창해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됐다. 참 고마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