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서의 일과 (69회)
  제11장 영어(囹圄)의 생활

나의 문제로 세상은 떠들썩했으나 오히려 형무소 안에서의 나의 생활은 평온하고 또한 단조로웠다. 아침 8시 기상, 침구를 개어놓고 세수를 하고 나면 소제가 밥을 갖다 준다. 소제라고 하면 절도와 같은 잡범의 기결수 중에서 행형 성적이 좋은 사람을 골라 미결수 감방에 배치된 자를 말하며, 한개 사에 2, 3명씩 담당의 감독 밑에서 식사배급, 변기청소 기타의 잡무에 종사하게 되어있다.

배급되는 식사는 관식인 경우에는 보리와 콩이 반반에 약간 쌀이 섞인 밥에다가 단무지 반찬 정도이고, 사식인 경우에는 쌀을 위주로 약간의 보리가 섞인 밥에다가 반찬으로는 꽁치 반 토막에 도라지나물, 시금치나물, 감자튀김 등을 한데 모은 것, 그리고 그런대로 먹을 만한 국 한 그릇으로 되어 있다. 관식은 물론 무상이지만 사식인 경우에는 구치소에 미리 맡겨놓은 돈 중에서 매끼마다 30원씩을 공제한다.

마포에 있을 때에 관식에 하도 질렸기 때문에 서대문에 와서는 처음부터 사식을 먹기로 하였지만 아침 점심 저녁에 항상 똑 같은 메뉴의 음식만 들어왔기 때문에 약 한 달이 지난 뒤부터는 관식도 받아먹기로 하였다. 사식을 사먹는 돈(매일 90원)으로 고추장, 설탕, 식빵, 엿, 마가린, 통조림(꽁치, 고래 고기) 등을 사먹는 것이 도리어 영양에도 좋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면 곧 변기를 복도에 내 놓아야 한다. 각 방에서 내놓은 변기를 소제가 가져다가 한데 모아놓고 그리고는 방마다 있는 물동이에 식수를 배급해준다. 변기를 만지던 손으로 곧 물을 떠다주기 때문에 물을 마시기가 기분이 나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식수 배급이 끝나고 새 변기가 교환되면 그때부터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일과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아니고 그저 방안에 앉아 있는 것뿐인데 하루건너 가족 면회가 있으면 면회실로 불려나가고 또 변호사가 찾아오면 불려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일 조차 없으면 그저 하루 종일 마루방에 앉아 공상이나 하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일과였다.

구치소 안에서의 나의 수형번호는 5515번이었다. 번호가 홀수인 사람은 월, 수, 금요일에 가족 면회가 허용되었다. 방안에 앉아 있으면 담당이 와서 방문을 열어주며 면회라고 알려 준다. 옷을 차려 입고 복도로 나오면 사마다 있는 담당의 책상 옆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얼마 후에 인솔자가 와서 데리고 내려가 대기실로 안내 한다. 여기에서는 면회하러 나온 사람이 수십 명이 득실거리는데 대개가 잡범들이지만 때로는 장면, 김두한, 진승록, 최무룡 씨와 같은 저명인사도 눈에 띄었다. 아는 사람이 보이는 경우에는 서로 놀래는 표정을 짓든가 또는 목례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대기실 안에서는 서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만일 구석에서 수근 거리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대기실 담당의 기합을 받아야 했다.
 
▲ 구치소

하루는 어떤 담당이 기합을 넣는 대신에 떠들지 말라고 애원하고는 나를 힐긋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ʻ여러분 내 말을 좀 들어 보시요. 나는 여기에서 근무한지 3년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만 내가 이 방에서 경험한 바로는 지금은 기결수 감방으로 가 있는 홍진기 씨와 같은 모범수는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분은 이 방에 내려오면 의자에 정좌한 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꼿꼿이 앉아 있었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말을 걸어와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ʼ 라고 말하고는 또 한 번 나를 힐긋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마 나와 홍군이 대학 동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간수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잠시 동안 기다리고 있으면 간수가 대기실 문을 열면서 내 수형 번호를 호출한다. 그 소리를 따라 나가면 맞은편에 있는 면회실로 안내된다. 거기에는 가족이 와 있으며 나를 불러낸 간수는 그 옆에서 일체의 대화를 기록한다. 면회시간은 3분. 그저 몸 편히 있는가, 애들은 잘 있는가, 학교에 가는 애들의 등록은 했는가, 등등의 평범한 대화 정도 밖에는 할 수가 없으며 그 이상의 심각한 말이 나오면 곧 제지를 받는다.

면회가 끝나면 다시 대기실로 왔다가 안내하는 간수를 따라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방안에 앉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담배를 피지 못하는 것이 불편 하기는 하였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그것도 그리 고통이 되지는 않았다. 저녁식사 후에 점검이 끝나면 8시에는 자리에 누어야 한다. 비록 운동부족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마룻바닥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자리에 누우면 곧 잠이 들었다.

8월14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자 담당이 와서 오늘 출정이라고 알려준다. 출정이 무엇이냐고 반문하니 선생님은 중앙군재이니까 식사 후에 육군본부로 가셔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사람이 찾으러 올 것입니다, 라고 말해 준다. 재소자가 검사의 심문을 받거나 법원의 재판을 받기 위하여 불려나가는 것을 여기에서는 출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시는 계엄 하에 있었기 때문에 정동에 있는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것을 민재라 하고 군법회의에 나가는 것을 군재라 하였으며 육군본부 법무감실 검찰부 즉 보통군법회의 검찰부를 중앙군재, 필동에 있는 방위사령부를 서울군재, 그리고 영등포 제6관구사령부를 경기군재라 했다. 절도와 같은 잡범은 민재에 불려 나갔고, 나와 같은 소위 정치범은 중앙군재에서 취급하였으며 그 밖의 범죄는 서울군재 또는 경기군재에서 담당하였다.

아침을 먹은 다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담당이 와서 문을 열어주며 출정이니 옷을 입고 나오라고 말한다. 담당의 지시대로 복도로 나와 앉아 있으니 다른 간수가 와서 내 번호를 부른다. 매우 인상이 좋고 친절하였는데 계급은 교도였고 안상배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옛날 계급으로는 간수부장이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저 안 부장으로 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안 부장을 따라 아래층 사무실로 갔더니 거기에는 다른 미결수 세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도보의 계급장을 달고 이병철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또 한사람의 간수가 오더니 고생이 많다고 위로하면서 손목에다가 고랑을 채운다.

이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비록 형무소 안에 들어와 있을망정 내가 죄인이라는 의식을 조금도 가져본 일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여 어린애 같은 호기심으로 나날을 보냈던 것인데 이제 막상 손목에 쇠고랑을 차고 보니 내가 여기에 들어온 것이 구경삼아 온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안 부장과 이 담당 두 사람이 달려들어 우리 네 사람을 한 줄로 묶었다. 모두들 저고리 위로 마구 묶었지만 안 부장의 호의로 나는 저고리 밑으로 묶어서 밖에서는 묶은 줄이 보이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리고는 따라오라고 말하면서 두 간수는 앞장을 섰고 한 줄에 묶인 우리 넷은 그 뒤를 따라 나섰다. 형무소 정문에서 잠간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와 군 트럭에 올라탔다. 형무소 밖에는 면회하러 온 가족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으며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로 쏠렸다. 약간 얼굴이 뜨거웠으나 일부러 태연한 척 하면서 영천 뒤 인왕산의 판자집을 바라보았다.

트럭은 쏜살같이 달려 육군본부로 들어가 이리저리 돌다가 멎은 곳이 보통 군법회의 검찰부라는 간판이 붙은 자그마한 건물 앞이었다.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곧 문옆에 있는 죄수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방이었고 묵었던 줄만은 풀어 주었으나 고랑은 그대로 찬 채 묵묵히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마 후 안부장이 대기실 문을 열더니 나오라고 한다. 고랑을 차고 그대로 따라 나서니 옆방으로 안내한다. 그 방에는 책상 두개가 놓여 있었고 중위 또는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 5, 6명이 서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들은 일제히 경례를 붙이고는 “선생님 이게 무슨 꼴입니까. 뵐 낯이 없습니다. 여보 안 부장 고랑을 미리 끌러드리지 않고 왜 여기까지 그대로 왔소.”라고 말한다. 그러자 안 부장은 힐끗 다른 장교의 눈치를 보았고 그 장교는 풀어 드리라고 지시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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