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져 미국 하원의원 (95회)
  제14장 공직생활2

반한 인사로 알려진 미국의 프레이져(Donald Frazer) 하원의원이 4월 1일에 장관실로 나를 찾아왔다. 수행한 사람들을 보니 모두 불량배 같았다.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1) 서울 대학교의 교수들이 당신의 출신구에 있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당신을 통하여 미네소타 주와 미네소타 대학에 감사한다.

2) 처음 방문하는 한국에서 직접 자기 눈으로 보니 한국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을 줄 안다. 지금까지 구미의 인사들은 직접 한국에 오지는 않고 동경에서 한국에 대한 소식을 듣고 돌아가서 나쁘게만 선전해 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a) 일본기자의 70% 가량이 북한을 찬양하는 대신 한국을 비난하고 있다.
b) 일본인의 대한관이 우호적이 아니다.
c) 일본에 있는 조총련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반한 인사에게는 격려의 편지를 자꾸 보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나쁘게만 선전되어 있다. 이제 당신이 직접 와서 보니 생각이 달라졌으리라 믿는다.

3) 동아일보의 논조를 보면 우리나라에 언론자유가 없다고 말할 수가 없다. 동아일보와 같이 심하게 정부를 공격하는 신문은 세계에 둘도 없을 것이다. 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로이 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는 절대로 보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산당원과 정부전복 음모자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4) 우리가 이처럼 반공에 예민한 것은 당신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판문점에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동독은 서독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다. 임진강 저쪽에 있는 그들의 대포의 착탄거리는 한강 너머에 있는 반포 아파트까지다. Washington D.C.에서 덜레스 공항까지의 거리다. 미국이 만일 이런 상황 속에 있다면 당신네들 은 더 겁을 집어 먹을 것이다.
 
▲ 1975년 방한했던 당시의 미국 프레이저 하원 의원 [사진 ; 국가기록포털]

5) 당신이 미국에 돌아가서는 여기에서 보고 느낀 것을 사실대로 미국 국민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은 그에게는 마이동풍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반한 활동을 그대로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선거에서 낙선되었고 정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의 존재는 미국에 대해서도 이익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역시 질 나쁜 정치깡패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입은 상처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역시 한국이나 미국이나 질 나쁜 국회의원은 해만 입힐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동아일보 (1975. 8.20.)      
4월 5일 장개석 총통이 87세로 서거. 7일 중국대사관에 설치된 빈소에 가서 분향.
4월 9일 국방부 장관의 명령으로 인혁당 관계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4월 15일 장흥교도소 개소식 거행.
4월 25일 씨놋트신부에 대한 출국명령
4월 30일 월남국 패망(1975년)

5월 10일 여의도에서 시민 140만 궐기대회
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 공휴일을 하루 앞두고 재소자 2,085명 가석방.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교도소의 재소자가 5만명을 돌파하였음을 보고.

7월 8일 사회안전법 국회통과.
7월 18일 서울구치소 본청 준공식

8월 17일 장준하 등산 갔다 실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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