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판정을 받은 이선 (97회)
  제14장 공직생활2

최규하 내각 탄생

그간 김종필총리는 특별히 실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의 존재는 박 대통령에게는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김 총리의 주변에는 후계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그것이 우리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러한 탓인지 박 대통령은 김 총리를 퇴진시키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정기국회가 끝나고 개회식이 거행된 다음날인 12월 19일 아침에 국무위원들은 연명장에 서명함으로서 내각이 총사퇴하였다. 이리하여 최규하 내각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날 오후 3시에 신임과 연임 국무위원들은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았다.

총리와 외무(김동조), 내무(박경원), 농수산(정소영), 보사(고재필), 체신(장승태), 문공(이원경), 제1무소속(김용태), 제2무소속(구태회)가 바뀌었다. 김치열 검찰총장이 내무로 승진하였고 법제처장 이선중이 검찰총장이 되었다. 공화당 대변인으로 있던 신형식 군이 제1무임소장관으로 발탁되었다. 나는 제 24대에 이어 제25대도 법무부장관으로 재임명되었다.

이 무렵에 나는 이선의 와병으로 침울한 심정이었다. 개각 다음 날인 12월 20일 저녁에 이선은 드디어 백병원 602호실에 입원하였고 12월 23일에는 폐암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12월 26일 저녁 워커힐에서 김종필 내각의 각료들이 이별의 회식을 하였으나 나는 그저 울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이선의 와병

1976년(60세) 근래에 와서 이선은 기침을 많이 하였다. 그는 불단 앞에서 향을 피우고 기도를 자주 올렸는데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에 심하게 기침을 하였다. 연기 알레르기에 걸린 것이 아닌가라고 걱정될 정도였다. 그리고 신경질이 대단하여 자그마한 일에도 과격하게 성을 내곤하였다.

1975년 10월 24일(UN데이. 당시에는 공휴일이었다.) 아내는 새로이 개통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나와 함께 남채를 데리고 대관령까지 드라이브하고 온 그날 밤에 이봉국의 초대로 북악산 곰의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그는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왼쪽 어께의 통증이 심하여 처음에는 고양군에 있는 오성한의원의 치료를 받았다. 그는 서일교 전 총무처장관의 간병을 치료하여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며칠 동안 부항을 맞았으나 별로 신통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차도가 있는 것 같다가도 곧 고통이 심해지곤 하였고 아프다는 부위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할 수 없이 초동에 있는 백병원에 입원하였다. 주치의는 김경원 대사의 동생인 김경식박사. X선 사진을 찍어 본 결과 폐암임이 판명되었다.

나는 이것을 본인에게는 물론 애들에게 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본인은 끝내 자기가 무슨 병인지를 모르고 마지막 순간까지 소생의 희망을 가진 채 숨을 거두었다.

당시에 우리 집에는 점술인 같은 이상한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발병되고 6개월이면 생명을 다한다는 의사진단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1주일이면 틀림없이 완쾌된다는 점술인의 장담도 있어 나의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입원하기 전 12월 초순에 나는 병석에 누어있는 이선의 손을 잡고 오로지 부처님의 정법만 따를 뿐 모든 사도는 철저히 배척할 것을 다짐하고 또 맹세하였으나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쪽에서는 절대로 죽는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절대로 산다고 장담하고 있으니 인지상정으로 나의 관심은 후자의 쪽으로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달 밖에 못산다는 진단은 X선 사진을 근거로 한 것이라 소위 과학적인 판단이다. 이 이상 객관성을 띠고 있는 것도 없다. 그러나 당시의 나로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의 아내가 죽게 된다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점술인의 말에 기대를 걸어 보기도 하였다.

12월 24일 백병원의 주치의로부터 정식으로 폐암 통고를 받고 나는 한량없는 슬픔 속에 빠져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혼자 가슴을 치고 울었지만 그러나 애들에게는 마지막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애들에게 알려주면 여자인지라 금방 표정에 나타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환자가 눈치 챌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선이가 절망에 빠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치의에게 부탁하여 그저 신경성골수염이라고 거짓으로 알려주게 하였다.

12월 25일에도 나는 하루 종일 환자 옆에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명동 성당에서는 트리스마스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 같았으나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우리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주지는 못하였다.

12월 26일 나는 절망과 낙관의 둘 중에서 하나만을 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절망과 낙관 이 두 가지 모두를 초극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여기에서 나는 금강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생각하였다. 불고 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佛告 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나는 이 경의 구절을 영준이한테 붓으로 써서 병실과 집의 벽에 붙이도록 하였다. 이것을 보고 환자는 무척 기뻐하였고 열심히 그것을 독송하기도 하였다. <무릇 모든 눈에 보이는 현상은 다 허망한데 이 모든 상이 결국에는 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여래를 볼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인생이 허망하다고 실망하지 말고 허망함을 진실로 깨닫는 순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이선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12월 27일 나는 어제 밤에 있은 일을 백병원에 가서 이선에게 다 말하였다. 간 밤에 잠을 좀 잤다고 하는 그는 내 말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였고 병문안 차 온 백성욱 박사에게 자랑하기까지 하였다. 반면에 환자의 우측 가슴 밑 늑골에 엄지 손가락만한 뼈가 밖으로 뛰어 나왔다. 동시에 가슴의 통증은 없어지고 그리고 숨이 가퍼졌다. 잠시이기는 하지만 평온을 찾은 것이다.

이날 밤 9시에 환자의 혈압이 갑자기 내려가 심장이 작동하지 못하였으므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응급치료로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12월29일. 감기에 걸렸다. 오성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다 먹었다.

12월31일. 감기 열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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