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여행 (100회)
  제14장 공직생활2

나의 공식초청을 받은 중화민국의 사법행정부장 왕임원 씨가 1975년 10월 13일에 내한하였다. 10월 14일 나는 그에게 오찬을 베풀었고 10월 15일에는 민복기 대법원장이 호텔에서 역시 오찬에 초대했으며 10월 16일에는 주무송 대사 주최로 중화민국 대사관에서 만찬이 있었다. 그리고 10월 17일에는 성균관 대학교에서 그에게 명예 법학박사의 학위가 수여 되었고, 다음날 왕 부장은 한국을 떠났다.

대만으로 돌아간 그도 나를 공식 초청하였다. 12월 13일에 정기국회가 끝나고 다소 한가해진 다음 12월 15일에 주대사가 나를 찾아와 왕부장의 초청을 정식으로 전달하고 대만 방문에 관한 여러 가지 절차를 상의하였다. 당시에는 이선의 병이 심각하여 정신이 없었으나 대체로 다음해 2월에 방문하기로 약속하였다.

해가 바뀌고 1976년 1월 25일에 이선은 세상을 떴다. 나는 정신이 없었고 여행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대만에서는 빨리 와달라고 재촉해 왔다. 할 수 없이 나는 2월 20일에 청와대로 가서 나의 대만 방문에 관한 대통령의 윤허를 얻어냈다. 그 소식을 들은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1,000불을 보내왔고 이선중 검찰총장이 100만원을 보내 왔으며 또 법무부에서는 170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2월 26일에는 나의 여행을 축하하는 만찬이 중국대사관에서 있었다. 2월 28일에 출국을 윤허하는 대통령의 공식 재가가 있었고 나는 몇 군데에 출국인사를 하고 3월 1일에 CAL기로 김포를 떠났다. 안경렬 출입국 관리국장과 윤종수검사가 나를 수행 하였다.

대만에 도착한 것은 3월 1일 저녁이었다. 공항에서 간단한 환영행사가 있은 후에 우리 일행은 원산대반점에 투숙하였다. 지난날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다가 지금은 주중대사로 와있는 김계원 장군이 나를 맞아 주었다. 김 대사와 윤 검사는 인척 사이였다. 이날 저녁 명동 성당에서는 김대중 윤보선 등의 반정부 선언(소위 명동 선언)이 있었으나 대만에 와있는 나로서는 귀국할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3월 2일. 아침에 왕임원 부장을 집무실로 방문하였고 곧 이어 왕부장과 함께 엄가금 총통을 예방하였다. 장개석 전 총통이 쓰던 방인데 장 총통이 죽은 후에 엄 부총통이 그 자리를 계승한 것이다. 엄 총통은 나에게 대수경성훈장이라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나는 그 분에게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에 관하여 설명하였고 그 분은 나에게 삼민주의에 관한 설명을 하였다.
 
▲ 중화민국 방문 엄가금 총통 예방 (1976.)

총통실을 나온 후에 나는 대만대학을 방문하여 몇몇 교수들과 점심을 같이 하였다. 이때 대만대학은 나에게 주자어류 전권 8책을 증정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대만이 자랑하는 고궁박물관을 참관하였다.

3월 3일 아침에 대만의 사법원장을 방문하였고 곧 이어 장경국 행정원장을 예방하였다. 이 분은 장개석 씨 아들이고 자유중국의 실권자이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다. 그곳을 나오는 길로 대만시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자호에 갔다. 이곳은 장개석 씨가 휴양지로 자주 찾던 곳이며 그의 시신이 매장되지 않은 채 그대로 안치되어 있었다. 본토를 수복하여 고향에 돌아가기 이전에는 매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분향예배하고 돌아왔다.

3월 4일. 대만의 남쪽에 있는 고웅시로 갔다. 자유중국의 공업 중심지인데 여기에서 나는 조선소와 정유공장을 구경하였고 그리고 그들이 자랑하는 감옥소도 가보았다. 조선기술이나 정유시설은 우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3월 5일. 동오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의 학위를 수여받고는 곧 홍콩으로 가서 하루를 쉰 다음에 3월 6일 KAL기로 귀국하였다.

대만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곳의 인사들을 많이 만났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언제나 그 분들과 함께 하였다. 처음에는 그들과 나 사이에 공통적 화제가 없어서 무척 답답하였는데 내가 삼국지에 관한 것을 화제로 꺼내자 그 분들은 반가워하면서 나중에는 아주 즐거운 대화가 계속되었다. 중국인들은 매우 친절하였고 요리는 무궁무진하게 나왔다.
 
이처럼 내가 환대를 받고 있는 것을 기뻐해 줄 사람이 세상을 떠나 없는 것이 가슴 아프고 한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호텔에서 나는 이런 글을 쓰기도 하였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내가 여기에 오게 될 것을. 병석에 누어있던 당신이 나에게 마음 걸리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말하지 않으셨소. 당신은 설마하니 잊지는 않았겠지요.
만리타국에 손님으로 갔다 오면 소식도 전해주고 선물도 가져와서 함께 기뻐하자고 서로 약속한 것을 설마 잊지 않았겠지요.
당신이 떠나고 무거운 걸음으로 여기에 오니 아무리 융숭한 대접에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아도 가슴만 메어집니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반겨줄 당신은 보이지 않고 애들과 썰렁한 방만이 나를 맞아 주겠지요.’

서울에 돌아와 짐을 풀어보니 왕임원 부장이 선물로 보낸 <二十五史> 50책이 들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왕 부장에게 감사한다.

3월 10일에 주무송 대사가 다시 문안방문차 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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