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 문제_1 (103회)
  제15장 공직생활3

1976년 6월 25일 오후 2시에 청와대 국무회의가 있었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몇몇 장관의 책상위에는 한 무더기의 유인물이 미리 놓여 있었다. 김치열 내무장관이 그렇게 준비한 것인데 그 내용을 대충 훑어보니 일부 기독교인들의 용공활동에 관한 자료들이었다.

국무회의의 모든 안건이 끝나자 대통령은 “내무장관의 보고사항이 있는 모양이니 말씀해 보시오”라고 말하였다. 김 장관은 일어나 그가 조사한 NCC계통의 기독교 인사들의 활동상황을 보고하고 그리고는 반공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종교는 불법화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로 뜻밖의 제안이었다. 특히 미국의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 하에서 이 제안은 심각한 사태로까지 몰고 갈 불씨가 될 것이 틀림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만일 이런 종파를 불법화시킨다면 결국 미국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빌미만 제공하게 되어 이것은 우리나라의 존망에도 관계되는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장관들은 별 말이 없었다. 다만 주무부 장관인 김성진 문공부 장관과 말참견하기 좋아하는 최경록 교통부 장관만이 신중을 기해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정도의 발언을 하였을 뿐이다. 다들 책임질만한 발언을 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침울하였다.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더구나 종교문제 만큼은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이 일에 관여하기가 부담스러웠지만 그러나 미국을 떠나서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볼때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기독교를 탄압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방관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이의 발언이 나오지 않기에 결국 나는 이렇게 말 하였다.

“NCC를 지금 당장 불법화 할 수는 없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장개석 씨 같은 분이라면 몰라도(장 총통은 NCC를 불법화하였다.) 우리 대통령은 확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시기 때문에 만일 우리 정부가 NCC를 불법화 한다면 외국에서는 그것을 종교탄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법무부의 입장에서도 경찰이 NCC계통의 목사들을 잡아온데 대하여 찬성할 수가 없다. 젊은 검사들이 법정에서 목사들을 상대로 해방신학에 관한 논쟁을 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무부에서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반공법 등에 위반된다고 인정되는 사건만을 검찰에 송치해주길 바란다.”
 
▲ 반정부 활동으로 구속된 박형규 목사

내 발언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막혔던 가슴이 확 뚤린듯한 어조로 나의 주장에 적극 찬동하였다. 이제 법무장관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라고 세 번씩이나 반복할 정도로 내 반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리하여 그 자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기독교 그 자체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목사도 국민의 한 사람이므로 그가 만일 법에 걸리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에만 법으로 그를 다스린다.’

이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국책의 하나로 전해오고 있다. 그동안 김치열-김병금(치안본부 제3부장) 팀은 중앙정보부를 제치고 NCC계통의 박형규 목사 등 7명을 구속하여 사건화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정측은 경찰의 이번 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청와대 측에서도 그 귀추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나의 발언으로 사건의 개념이 명백해졌으므로, 대통령이 나의 입장을 두둔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유상근 통일원장관은 대전으로 내려가 기독교인들의 회합장소에서 지금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기독교를 불법화하기로 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고 그것이 곧 중정을 통하여 청와대로 보고되었다. 그러한 관계로 유 장관은 해임되었고 이용희 전 서울대 교수가 통일원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유상근 씨는 청와대 국무회의 진행과정을 잘못 이해하였던 것이다. 6월 26일 나는 신직수 중정부장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어제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오고간 말을 알려 주었다. 그의 반응은 응당 이런 종류의 사건은 중정에서 다루어야 할 것인데 김 내무가 중정과 상의도 없이 사건을 만들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권력싸움이 또 벌어진 셈인데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법대로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중정 편을 들게 된 것이다.
 
나는 서울지검 공안부장 정치근 검사에게 치안본부에서 다루고 있는 박형규 목사 사건의 기록을 곧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7월 1일에 정 검사의 보고가 올라왔다. 그날 오후 1시 30분에 나는 청와대로 가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를 하였다. 박 목사 등에 관하여 치안본부에서 문제 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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