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교부장관으로 전임 (105회)
  제15장 공직생활3

정종욱 군과 함께 벨젤교수의 연구실에서 조수로 있다가 괘팅겐대학의 교수로 가있는 슈라이버가 10월 15일 한국에 왔다. 그의 체한시의 모든 비용은 내가 개인적으로 부담하기로 하고 우선 그를 프라자호텔에 투숙시켰다.

10월 16일에 그는 박동희. 심헌섭 교수들과 함께 나를 방문하였고 오후에는 김웅, 심헌섭과 함께 대구로 내려갔다. 경주일대를 구경하고 10월 19일에 상경한 그들과 조선호텔에서 오찬을 하고 그날 오후4시 그는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대만으로 떠났다. 전야에는 영채의 집에서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과 함께 밤 새워 가면서 폭음을 하였다고 한다.

10월 26일 언론인 오종식 씨 별세.
11월 3일 카터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자유세계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12월 1일 원효의 중론송 서문문고에서 출간.

문교부 장관으로 전임되다

12월 4일에 개각이 있었다. 최규하 총리는 유임되고 나는 갑자기 쓰러진 유기춘 씨의 후임으로 문교부장관에 전임되었다.

12월5일은 일요일이므로 영준이를 데리고 뉴코리아 골프장에 나가 골프를 쳤고 그 다음날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았다. 법무부로 돌아와 이취임식을 하고 그 길로 국립묘지에 가서 참배하였다. 그러나 법무부를 떠나는 것이 못내 서운하였다.

법무부장관으로 있는 동안 나는 지방순시를 많이 하였다. 1974년 중에 우선 지방 검찰청 소재지를 초도순시 한다는 명목으로 전부 다녀 보았고 나머지 재임 중에는 검찰지청과 교도소, 소년원 그리고 출입국 사무소를 남김없이 찾아가 보았다. 이리하여 법무부 산하의 전 기관을 순시하였다. 역대의 법무장관 중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법무부 재직 중에 비록 아내를 잃는 비극을 겪기는 했으나 장관으로서의 근무는 성의를 다 하였고 특히 청렴하도록 힘을 쏟았다. 낙제장관은 아니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문교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문교부는 예산이 엄청나게 많았고 그리고 일의 내용도 다양하였다. 반면에 직원들의 계통은 법무부처럼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고난과 좌절의 문교부 시절이 시작된 것이다.
 
▲ (경향신문 1976. 12. 4.)

법무부에 비하여 문교부의 예산은 엄청나게 많았고 그 만큼 장관의 하는 일이 바빴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매일 만나야 했고 따라서 그 피곤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과 정상천 정무 제2수석비서의 간섭은 대단하였다.

일제시대에 보통학교 교사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은 나름대로의 문교관을 가지고 있어서 장관의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였다. 이러한 관계로 문교부 장관으로서의 나의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전임 유기춘장관은 전라도 출신을 대거 등용하였던 것인데 부산 출신인 정 수석은 그들을 몰아내고 경상도 출신으로 모두 바꾸라고 압력을 가해왔다. 이것도 나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중에는 장관 자리에 있는 것이 짜증스러워졌다. 이리하여 문교장관으로서의 나의 재임은 1년으로 끝났다. 이제 그간에 있은 일들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취임

1976년 12월 4일에 개각이 있었다. 최 총리는 그대로 남았고 나는 문교부로 전임되었으며 이선중 검찰총장이 후임 법무로 임명되었다. 다음날 나는 서정각 서울지검장과 영준 그리고 최금천 프로와 함께 뉴 코리아 골프장에 나가 골프를 쳤다.

12월 6일 10시에 청와대에서 12월 4일자로 임명장이 수여되었고 그 길로 나와 법무부장관 이임 취임식을 거행하였다. 그 자리에서 이 장관은 지금까지의 나의 부드러운 법무행정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이 장관은 나중에 부동산취득문제로 국회에서 말썽이 나자 장관직에서 물러났지만 취임 초만해도 그 의욕이 대단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종합청사 6층에서 10층으로 올라가 단독으로 문교부장관 취임식을 거행하였고 그 다음에 서울대병원에 가서 유기춘 전문교의 부인을 위로하였다. 유 씨는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다.

12월 7일에는 어린이 대공원에서 조만식 선생 동상 제막식을 거행하였고 12월 8일에는 공화당, 유정회, 감사원장, 정상천 수석을 인사차 방문하였으며 12월 9일에는 전국 교육감의 인사를 받았다.

12월 10일에는 대전에서 새마을 지도자대회에 대통령과 함께 전용열차로 다녀왔고 12월 13일에는 시내 각 신문사, 방송국, 통신사를 인사차 방문하였다.

12월 15일에는 KBS로 취임인사를 갔고 끝으로 12월 16일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취임인사를 하였다. 12월 14일 법무부 검사들의 내방을 받았고 12월 18일에는 전국 대학총장들의 인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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