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총장 문제 (107회)
  제15장 공직생활3

숙명여대 총장문제

숙대 총장 김경수 씨의 임기가 끝나가자 후임을 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 대학은 재단분규로 아직 정식으로 이사회가 구성되지 못하였고 문교부가 지명하는 관선이사회가 있을 뿐이었으며 그 이사장은 노산 이은상 씨가 맡고 있었다.

1월 27일에 노산은 나를 찾아와 후임 총장에 관한 문교부의 생각을 타진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그의 생각은 서울대 부총장인 서명원 씨를 후임 총장에 그리고 김경수 씨를 서울대 부총장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김경수 씨를 연임시킬 생각이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1월 29일에 나는 고려대 전 총장 김상협 씨와 숙대 김 총장과 점심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이은상 씨의 고집이 대단하니 숙대 총장 연임은 단념하는 것이 좋겠고 서울대 부총장으로 가는 문제는 윤천주 서울대 총장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2월 8일에 윤천주 씨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타진해 보았더니 윤 총장은 김경수 씨를 서울대에 모실 수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윤천주 씨도 역시 이은상 씨와 마찬가지로 김경수 씨를 배척하는 태도가 완강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2월 11일 청와대로 가서 숙대 총장 후임에 서울대부총장 서명원 씨를, 그리고 서울대 부총장에 고병익 서울대 인문과학대 학장을 추천하여 대통령의 내락을 받았다. 이에 따라 2월 14일에 나는 그분들의 임명을 결재하였고 그리고 보니 김경수 씨는 실직상태로 된 것이다. 내가 아끼던 친구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를 돕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숙대 총장 서명원 씨는 곧 나를 찾아와 비명을 올렸다. 노산의 간섭이 심하여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무렵에 하루는 청와대에 갔더니 대통령이 “이은상 씨가 아직도 숙대의 이사장으로 있습니까. 그 사람 이제는 그만 쉬라고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통령의 방을 나오는 길에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이은상 씨가 대통령 각하의 이름을 너무 팔고 다니는 사실이 각하의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개인 용무로 일본에 갔다 오면서도 대통령의 심부름으로 갔다 온다고 거짓말을 한 사실이 확인되었읍니다.”라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이은상 씨를 불렀다.

“이 선생께서는 이사장 자리에 몇 년이나 계셨읍니까?”
“10년가량 됩니다.”
“연세도 높으신데 후진에게 자리를 물려줄 생각은 없으십니까?”
“나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우신데 장관은 어째서 나를 몰아내려고 하시오?” 
 
▲ 노산 이은상 [출처 ; 대종교 홈페이지]

대통령의 심중을 그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나로서의 안타까운 심정이었지만 그날 노산의 태도는 완고하고 고집불통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편수국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하여 조성옥 충남대 총장이 사표를 냈다. 그러자 서명원 총장이 그 자리로 가고 싶다고 신청해 왔다.

이리하여 3월 18일에 대통령의 사전재가를 받아 국무회의의 의결을 걸쳐 3월 24일에 서명원 씨를 충남대학교 총장에 임명하였다. 그러자 그날 오후에 이은상 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때까지도 그는 이사장직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훌륭한 총장이 빠져나갔다고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며 교수와 동창회 간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나를 배척하고 있으니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따졌다. 나는 “단지 그러니까 이사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대꾸하였고 그는 끝내 동문서답하면서 돌아갔다.

3월 26일에는 숙대 안의 공기가 더욱 험해져 갔다. 나는 할 수 없이 이 대학에 손을 대기로 결심하였고 그 방법의 하나로 재단이사회의 개편작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현재의 이사진으로는 이사장을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사장 후임으로는 전 부총리 태완선 씨를 지목하여 전화로 교섭한 끝에 내락을 받아 놓았다.

4월 4일 이은상 씨가 다시 나를 찾아와 후임총장 문제를 거론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의 뜻을 곡해하여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것은 대통령의 뜻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나의 입장이 한스러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려대학교의 차락훈 총장(숙대 재단이사)이 자기가 숙대 총장 자리로 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고대 총장이 숙대 총장으로 간다면 숙대생들이 크게 환영할 것은 틀림없었다. 나는 차형의 이러한 뜻을 곧 태완선 씨에게도 말해 주었다.

이은상 씨를 그만두게 하라는 것은 대통령의 뜻이지만 그 사실을 말하면 그가 또 대통령을 원망하고 다닐까봐 장관 선에서 원만히 해결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도리어 그는 대통령은 자기를 신임하는데 황 문교가 자기를 몰아내려고 한다면서 사사건건 문교부의 지시에 반대해 왔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청와대에서는 5월 13일 정상천 수석비서가 이은상 씨를 청와대 별관으로 불러 숙명대 재단 개편에 관하여 문교부의 방침에 협조하라고 당부하였다. 이로서 이은상 씨는 5월 20일 이사장직 사표를 이사회에 제출하였고 이 사표는 그 자리에서 수리되었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다.

5월 23일에는 고대의 차 총장과 만나 그의 고대 사임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는 김상협계의 등살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 즉시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반면에 태완선 씨를 숙대 재단이사장에 앉혀 놓았고 그 분을 통하여 재단의 정관을 개정하여 총장 정년 65세를 철폐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준비공작을 다 한 다음에 7월 6일 차락훈 씨 숙대 총장 임명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냈다.

이리하여 7월 13일에 차락훈 씨가 숙대 총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한편 김경수 씨가 소외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반년이나 걸리던 숙대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이은상 노인의 고집에 참으로 많은 애를 먹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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