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수국 사건과 교복자율화 (109회)
  제16장 공직생활4

2월 12일 칠보사에서 이선의 1주기 불공.

2월 15일 학원대책비 명목으로 중정으로부터 404,200,000원을 받았다. 서울 신탁은행에 2억, 농협에 1억을 정기예금으로 하고 1억여 원을 보통예금으로 하였다. 나는 이 돈으로 대학총장을 만날 때마다 학원 대책비에 쓰라고 현금으로 주었다. 이대 총장에게 1백만 원, 성대는 300만원, 고대, 연대는 500만원, 서울대 총장에게는 1.000만원씩의 대책비를 주었다. 생각지도 않게 문교부로부터 대책비 명목의 자금이 들어오자 각 대학 총장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환호성을 올리며 좋아 했다고 한다. 약 2억을 쓰고 나머지는 후임 장관에게 넘겨주었다.

2월 26일 서울대 졸업식에 주무장관으로서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는 옥채가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3월 7일 국방대학원에서 문교정책에 관한 강연.

편수국 사건

청와대의 사정특보실에 파견된 김석휘 검사가 나를 찾아와 중학교 교과서 문제와 관련하여 문교부의 편수국 직원들이 검인정 교과서 회사로 부터 뇌물을 받았음이 밝혀졌다고 알려 주었다. 급기야는 3월 10일 편수국장 이하 직원 10명이 구속되더니 계속해서 구속 인원이 늘어나 결국 총 33명의 편수국 직원 중에서 32명이 구속되고 말았다.

3월 2일에 다른 부서에서 5급 공무원 1명을 편수국으로 옮긴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만이 구속을 면했던 것이다. 결국 편수국은 전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3월 16일에 보도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뇌물의 수뢰자 명단에는 충남대 총장으로 가 있는 조성옥 전 차관도 들어있었다. 차관 재직 시에 검인정회사로부터 세모에 돈을 받은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3월 17일 아침 김정렴 비서실장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조 총장을 해임시키라는 각하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나는 대전에 전화를 걸어 조 총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그는 곧 상경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날 오후 3시 청와대에서는 비상대책 안보회의가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나는 대통령에게 조 총장에 관한 보고를 하였다.

“어제 편수국 사건에 관한 보도가 나가자 충남대의 조성옥 총장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자기가 차관으로 있을 당시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총장직을 사퇴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졌다. 파면하라는 것이 대통령의 뜻인데 이처럼 도의적 책임으로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한참 있더니 대통령은 입을 열었다.

“사표는 도착했습니까?”
“오늘 오후면 사표가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발표하시요.”
 
 
▲ 경향신문 (1977. 3.17.)  

이리하여 나는 조성옥이라는 한 일꾼을 살려낼 수 있었다. 내가 만일 그때에 대통령의 뜻대로 무조건 따랐더라면 조군은 오늘까지 공직에 머물러 있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편수국을 새로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동시에 검인정교과서 제도도 전면적으로 재검토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앞으로 여러 달이 걸렸다. 그러나 이에 관한 설명은 생략한다.

장기영 의원이 4월 11일 이침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61세. 조화를 보냈다.

중고교생 두발문제

하루는 김재규 장학실장을 불러서 중 고교생이 왜 머리를 빡빡 깎게 되었는가를 물어 보자 아마도 일제 군국주의 시대의 산물일 것이라는 것이 김 실장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외무부에 물어서 외국에 주재할 때에 본 그 나라 학생들의 머리 모양이 어떠하였는지 알아보라고 하였다.

얼마 후 조사 자료가 나왔는데 외국의 중ㆍ고등 학생들은 모두 머리를 기르고 있으며 머리를 깎는 나라는 우리뿐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나는 김 실장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가) 앞으로 중 고교생은 머리를 길러도 좋다. 다만 장발은 안 된다.
(나) 이 문제에 관해서는 찬반이 엇갈릴 것이므로 이런 방침을 신문에 발표하지 말고 은밀하게 처리해야 한다. 김 실장이 시도교육감에게 전화로 지시하고 교육감은 중고교장에게 역시 전화로 지시하여 교장 재량으로 실시하도록 한다.
(다) 교복 자유화는 안 된다.

이리하여 중 고교생의 머리는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였고 4월 12일에는 김 실장으로부터 이에 관한 장학지도 결과를 보고 받기도 하였다. 거리를 지나는 중 고등학생들의 머리가 길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고 조용히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날 광주에서 전남도의 중 고교장 회의가 열리는 자리에서 어떤 교장이 전남교육감에게 머리를 길러도 좋다는 전화는 있었으나 정식공문이 아직 없다고 질문하였고 이것이 전남일보에 보도되었다. 중앙의 일간지들은 깜짝 놀라 5월24일 아침 조선일보는 문교부에서 중 고교생의 머리를 기르게 하고 교복과 교모도 없앨 방침이라는 추측기사를 냈고 석간신문들도 이를 보도했다.

당황한 문교부는 교복과 교모는 없앨 방침이 아니라고 해명하였고 이를 기사화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어느 신문도 정정기사를 내주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청와대에 불려갔다. 대통령은 약간 못 마땅한 표정으로 교복을 없애기로 하였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교복은 없애면 안 됩니다. 복장을 제멋대로 입도록 하면 빈부의 차이가 눈에 띄게 되어 사회적으로 좋지 못한 결과가 발생합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번 일에서도 드러난 것이지만 문교부는 법무부 때와 달라 출입 기자들이 자기 멋대로 기사를 쓰고 국, 과장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문교행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나는 이런 말을 하기도 하였다.

“정식으로 문교부에서 발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문교행정에 관한 기사는 모두 거짓말인줄 아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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