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과 급식아동 사망사건 (112회)
  제16장 공직생활4

유럽여행

8월 22일 저녁 나는 유네스코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제네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행으로는 정태수 사회교육국장, 김규택 유네스코 사무총장, 이상주 서울대 사대교수가 동행하였다.

앵커러지를 거쳐 파리로 가는 기내에서 두 밤을 자야했지만 나는 신경이 예민하여 한잠도 자지 못하였다. 8월 23일, 파리 드골공항에 내려 잠시 윤석헌 대사와 면담하고 바로 본으로 가서 K.nigshof 호텔에 투숙하였다. 이 호텔은 지난날 박 대통령이 묵었던 곳이다. 벨젤교수의 제자들이 부부 동반으로 찾아 왔으므로 이 호텔에서 그분들과 만찬을 하였다.

8월 24일 아침 본에 있는 한국유학생들과 조찬을 같이 하고 곧 서독 정부의 외무장관, 문화장관, 문화차관을 예방하였고 오후3시에 벨젤 선생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였다. 선생의 유가족과 제자 교수들이 모두 동행하였다. 독일에 있는 동안에는 정종욱 군이 줄곧 동행하였고 내가 탄 차에는 태극기를 달고 경호차 2대가 꼭 붙어 다녔고 내가 방문하는 외무성과 문화성의 건물에는 태극기가 게양되는 등 완전한 국빈대우였다.

8월 25일 아침 다시 파리로 가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고 하루를 쉬었다. 8월 26일 오전 유네스코 본부와 프랑스 문교성장관을 예방하였고 저녁에는 정부에서 새로 구입한 윤 대사 공관에서 만찬을 하였다.
 
▲ 유네스코회의 참석(앞줄 당시 노신영 주제네바 대사, 석우, 이규택 사무총장)

8월 27일 오전 베르사이유 궁전을 관람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리비아에서 상담을 마치고 파리에 온 영준이가 와 있었다. 타국 만리에서 부자상봉을 하니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저녁에는 한국음식점에서 재불 학생들에게 불고기 파티를 열어 주었다.

8월 28일에는 나폴레온 묘소와 밀레공원에 갔다 와서 쉬었다.
8월 29일 영준이와 작별하고 제네바로 가서 노신영 대사 댁에서 저녁을 같이 하였다.
8월 30일 유네스코 총회의 개회식에 참석하고 노 대사와 함께 몽블랑에 올랐다.
8월 31일 유네스코 회의에 참석. 북한 측의 발언이 온건하였기에 휴게실에서 북측대표를 불러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에는 고창수 참사관의 아파트에서 만찬.

9월 1일 유네스코 회의 참석. 우리 측 발언을 김규택씨가 대독. 총회 무사히 마침
9월 2일 제네바의 레만호를 일주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에비앙에 들러 골프를 쳤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생활 수준의 차를 눈으로 볼 수가 있었다.
9월 3일 제네바를 떠나 츄리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9월4일 홍콩에 도착하여 호텔 투숙.
9월5일은 휴식.

9월 6일 오전 홍콩 시내를 구경하고 오후 3시에 대만으로 출발.
9월 7일 이원족 중화민국 교육부장을 예방하고 또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그리고 고궁 박물관에 가서 오찬을 하고 관내를 구경하였다. 저녁에는 이 부장 주최의 만찬에 참석하였다.
9월 8일 장경국 행정원장을 예방하고 교포학교인 동오대학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구국청년단 본부에 가서 자세한 사업내용을 들었다.

9월 9일 시내 중심에 있는 샤오싱싱에서 만주식 서민조찬을 먹었고 연호에 있는 장개석 별장을 드라이브하고 왔다. 태풍이 접근하는 속에서 4시50분 KAL기로 귀국하였다.
9월 11일 태국 수상 내한. 서울대에서 명예학위 수여 영빈관 만찬. 타닌 태국수상은 귀국 후 쿠테타로 곧 실권.

9월 15일 한국 산악대원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하였다. 10월11일에 장관실에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돌아온 대원들(단장 김영탁 의원, 정상 정복자 고상돈과 그 밖의 대원들)을 접견하고 그들을 데리고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의 면담과 훈장수여가 있었다. 그리고 10월 12일에 에베레스트 등정대원 환영식을 거행 하였다. 나중에 고상돈 군은 알라스카의 맥킨리산에 올라갔다가 눈사태로 사망하였다.

급식아동 사망사건

국민학생들이 급식하는 빵을 먹고 9월16일 많은 아동들이 배탈이 났으며 그 중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본래 이 사건은 보건사회부의 소관사항이지만 언론과 국회에서는 모두 문교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었다. 여하튼 정부의 실책인 것만은 틀림이 없으므로 나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들의 공격을 혼자 받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나는 하점생 서울시 교육감에게 아무래도 각오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9월20일에는 모든 언론이 하 교육감의 인책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고 이에 따라 그는 나에게 사표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본래 이 사건은 문교부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의 사표를 수리할 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나는 청와대로 가서 이 사건에 관한 보고했더니 대통령은 유상급식제는 곧 폐지하고 그리고 교육감의 사표는 수리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다소 뜻밖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표수리 사실을 발표하면서 유상급식제는 폐지하고 무상급식은 존속시키되 그 방법을 개선하겠다고 하였다.

9월22일에는 학교급식관계로 시교육위원회 산하 공무원들이 한국식품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9월23일 국회 문공위에서 이번 사건으로 호되게 당했다. 장관을 그만두라는 신민당 의원들의 추궁에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된다면 당장에라도 그만 둘 용의가 있다고 답변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신현확 보사부장관은 “본래 이 사건은 제가 책임질 문제인데 장관께서 곤욕을 치루시니 뵐 낯이 없읍니다.”라고 말하였다.

9월24일에는 하점생 씨 후임으로 이창갑 경동고교장을 추천하여 대통령의 사전재가를 받았다. 이창갑 씨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가 벼락감투를 쓰게 됐는데 나는 그의 인품이 훌륭함을 평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9월30일에 임명장 수여.

대학에서 대학교로 승격시켜 달라는 요청이 각처에서 있었다. 나는 이 문제 때문에 전국의 대학을 돌아보았고 나중에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중에서 강원대학, 충북대학 그리고 계명대학만을 승격시키기로 하고 9월21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발표하였다.

IOC위원 장기영 씨가 사망하였으므로 이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였다. 나는 대통령에게 김택수씨를 추천하여 재가를 받았다. 김택수 씨는 곧 국제 올림픽 위원회 본부에 가서 각국의 경쟁을 물리치고 IOC위원에 당선되었다.

 
  고려대 총장 임명 건 등 박 대통령의 의중 (111회)
  성균관대 문제와 서울대 집회 (113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