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_2 (60회)

그 후 나는 미 국무성 초청으로 3개월 동안 미국 전역을 시찰하였고 그리고 한 달 정도 유럽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에 교섭을 받아 1962년 5월부터 동아일보의 논설위원을 겸하게 되었다. 그런데 5.16의 1주년이 되는 날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기명으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 취지는 군인이 정권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해롭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2) 5. 16 군사혁명의 성격—화랑형과 동남아형의 결합형

1962. 5.16. 동아일보 기명논단

최근 2년 동안의 우리나라 정치는 완전히 젊은 청년들과 군인들의 손에 의하여 좌우되어 왔던 것인데 이러한 일련의 현상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파악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직 우리나라 식자들 사이에 논의된 바가 없는 것 같다. 물론 우리는 과거의 우리 역사 속에서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사실을 끄집어 낼 수는 있다. 그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신라통일 당시의 화랑의 운동을 들 수 있겠고 그리고 둘째로 연상되는 것은 고려조 중엽의 무신들의 정권탈취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지금의 현실을 동남아 각국에서 근래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부패정권에 반항하는 군사 쿠테타의 일종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 같다.

1) 우선 동남아 후진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부패 숙청을 위한 군사 쿠테타에 관하여 고찰 한다면,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새로이 독립을 얻은 이들 약소국가에서는 미국의 경제 원조가 제대로 국민경제의 건설을 위하여 사용되지 아니하고 일부 부패정치인의 사복을 채우는 데에만 이용되었던 것인데 이러한 상태가 약 10년 가량 계속되자 국민의 불평은 날로 심해져 획기적인 수술을 단행하지 않는 한 국내정치는 오도가도 못 할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반면에 이러한 국내 정치의 혼란의 틈을 타서 공산주의자들의 붕괴작전은 더욱 맹렬의 도를 가하게 되었던 것인데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당면하여 분연히 일어선 것이 군부 내의 애국분자들이었으며 이리하여 태국, 파키스탄 그리고 버마 등의 여러 나라에서 군사 쿠테타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그 사이에 상당히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의 원조를 악용하여 치부한 자유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이 있었고 그리고 5.16직전에 공산 마수가 상당히 깊이 침투해 들어왔던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5.16 군사혁명을 동남아적인 특수현상의 하나로 규정해 버리려는 외국학자의 의견도 나올 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식으로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경우 우리의 4.19혁명의 의의는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외국에서도 군인이 일어나서 정권을 빼앗은 예는 많이 있지만 그러나 적수공권의 학생이 봉기하여 부패정권을 무너뜨린 예는 없었던 것이며 이러한 우리의 특수현상을 동남아적 현상이라는 범주 속에 집어넣고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특이한 것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다음에 고려조 중엽의 무신정권의 경우를 고찰한다면 이미 역사상 밝혀져 있는 바와 같이 처음에는 개경을 중심으로 한 문신과 서경을 중심으로 한 문신이 세력다툼을 하다가 드디어 서경 측 문신의 두목인 묘청이 난을 일으켜 개경 측 문신의 대표 격인 김부식에 의하여 평정됨으로서 우선은 그 대립, 상극의 상태가 지양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승리한 개경의 문신이 부패하자 정중부, 이의방등의 무신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빼앗음으로써 무인정치의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인데 이것은 또 다시 무신 사이의 파벌 대립의 투쟁으로 발전되는 바람에 생활난으로 인하여 각처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국력은 극도로 쇠약해져 나중에는 북방에서 침입해온 몽고족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사실은 문인대 문인의 싸움에서 문인대 무인의 싸움으로 발전 하였다가 그것이 무인대 무인의 싸움으로 전환함으로써 나라가 망하여 가는 과정을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무인이 정치에 간섭하는 경우에 동서의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인 것이며 이 점에 있어서 고려조의 사태는 도무지 참고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실을 우리의 5.16 군사혁명에 결부시켜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군사혁명의 주체세력은 고려조의 무신과 같이 항구적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패 숙청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2년의 약속으로 일어났던 것이므로 고려조의 사실은 일반교훈으로서는 용납이 되지만, 우리의 현실 설명에는 채택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3) 이리하여 끝으로 신라조의 화랑정신에로 소급하게 된다. 주지되어 있는 바와 같이 화랑은 무예를 겸비한 20세 미만의 소년들로 된 수양단체의 일원을 말하는 것인데 국가위급존망지추에 당면하여 나라의 청소년들이 일어나 신명을 바쳐서 구국운동에 헌신한 것은 화랑을 위시하여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현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물론 신라시대의 화랑정신은 김춘추와 같은 대 정치가에 의하여 남김없이 활용되어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의 성취에까지 발전되었던 것이지만, 그 후 불행하게도 이러한 청소년의 구국정신은 발휘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천여 년 동안을 내려왔던 것인데 최근에 이르러 3.1 운동 때에 잠간 그 빛을 보였다가 드디어 지난 4.19때에는 그것이 다시 한 번 크게 폭발하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아온다면 우리의 4.19는 천여 년을 잠복해 있던 민족정신의 재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경우와 오늘의 경우와의 차이점을 지적한다면 오늘의 경우에 있어서는 김춘추와 같은 대정치가가 나와서 북받쳐 오르는 청소년의 애국열을 실제 정치의 면에 그대로 반영시켜 주는 기성 정치인이 없었다는 점인 것이다. 이리하여 4.19의거는 결국 그것으로서는 실패로 돌아가고 또 다시 부패한 기성정치인이 재등장하여 동남아적인 현상을 되풀이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4) 위에서 분석한 바를 종합해 보면, 최근 2년 동안의 우리나라의 현상은 화랑형과 동남아형의 종합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즉, 화랑정신이 재 폭발하여 4.19의 학생혁명이 일어났지만, 위대한 기성정치인이 없어서 다시 부패의 길로 떨어졌기 때문에 동남아적인 군사혁명이 일어나 5.16은 있게 되었다고 봄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정신문화적 내지 유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지만 그 당시에 군인들이 하는 일에 이 정도나마 비판의 붓을 든다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함석헌 씨가 사상계를 통하여 통렬한 글을 쓴 것 외에는 내가 위에서 소개한 두 편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므로 주체 세력들이 나를 주목하고 나의 언동 하나하나를 감시해 왔다는 것은 있음직한 일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동아일보의 사설에서 계속하여 군사정부의 하는 일 또는 하고자 하는 일을 공격하는 글을 써왔다. 그러다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격으로 글자 하나를 실수하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문제 삼아 나를 구속하고 말았던 것이다.